인간, 아니 생명체의 행동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어려운 일이니까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다. 그런 인간의 행동과 그러한 행동의 이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유전자와 뇌(정확히는 신경)의 관계를 연구하는 분야가 신경유전학이다. 20세기 중후반 이후 놀라운 발전을 이룬 유전학의 성과를 뇌에 적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발상의 전환, 새로운 연기 기법의 고안과 적용, 분야 간 협력 등으로 놀라운 성과를 많이 이뤄내기도 했지만 아직은 갈 길이 먼 분야이기도 하다.
곽민준이 이야기하는 ‘아주 긴밀한 연결’은 바로 이 유전자에서 인간의 행동에 이르는 관계를 의미한다. 이 ‘연결’은 단순히 ‘유전자 ? 행동’이라는 한 단계, 혹은 몇 단계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유전자와 행동 사이에 수많은 단계가 존재하고, 그 단계 사이에 그야말로 ‘아주 긴밀한’ 연결이 필요하다. 이러한 긴밀한 연결의 고리를 이해하기 위해서 다시 여러 학문 분야 사이의 ‘아주 긴밀한 연결’이 필요하다. 곽민준은 신경행동유전학이라는 분야의 연구를 위해서 임상연구자, 실험유전학자, 생명정보학자의 세 그룹이 필요하다고 했는데, 이것도 크게 나누어서 그렇지 한 그룹만 보더라도 다양한 연구자들이 필요하다. 또한 이러한 복합적인 연구 그룹 자체도 서로 다른 연구 방향을 가지고 접근하는 그룹이 많이 있어야만 하나의 연구 주제에 관해서 진전된 이해가 이뤄지는 게 실정이다. 이들 간에 ‘아주 긴밀한 연결’이 필요한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물론 경쟁이 있을 수 밖에 없지만).
《아주 긴밀한 연결》은 이러한 긴밀한 연결이 이뤄지고, 필요한 신경유전학의 분야를 매우 열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현재 대학원생으로 연구에 파이펫을 잡고 연구 활동을 직접 수행하고 있는 저자의 패기가 곳곳에서 느껴진다. 유전학의 역사를 개괄하면서는 다윈과 멘델 이후 유전학의 계보를 정리하는 데서 단순화의 위험성을 무릅쓰면서 유전학의 흐름을 명확하게 이해시키고자 한다. 이렇게 유전학의 흐름을 나눈 후, 신경발생유전학과 신경행동유전학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복잡한 신경유전학의 분야를 이렇게 둘로 나눈 것도 과감한 시도이고, 각 분야에 대한 설명하는 것에서도 대표적인 질병이나 현상을 중심으로 시도하는 것도 영리하면서도 패기를 느낄 수 있다.
신경발생유전학에서는 발달 단계의 대표적인 세포 신호 전달 경로(이른바 mTor 경로)를 중심으로 국소 피질이형성증과 난치성 뇌전증, 자폐 스펙트럼 장애 등을 이해하고자 한다. 비록 이에 대한 치료법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과학자들의 노력은 이러한 질병의 메커니즘을 꽤 자세히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신경행동유전학에서는 질병보다는 우리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한 과학자들의 성과를 소개하고 있다. 기억의 장소와 메커니즘을 찾기 위한 칼 래슐리, 리처드 톰슨, 도네가와 스스무의 연구, 시간을 인식하는 유전자와 그 산물의 작용을 이해하기 위한 시모어 벤저와 로널드 코노프카, 제프리 홀, 마이클 로스바쉬, 마이클 영의 연구, 새의 노래를 통해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자 하는 여러 과학자들의 연구 등이다. 기억, 시간, 언어라고 하는 어쩌면 추상적일 수도 있는 주제를 과학의 영역으로 들여와 이것들의 메커니즘을 조금씩 찾아가는 과학자들의 연구를 보노라면 경외감이 든다.
저자의 패기가 확실하게 드러나는 것은 에필로그에서다. 제임스 왓슨, 리처드 도킨스, 다윈의 후배들(대표적인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를 비판한다. 그들에게서 어른거리는 우생학의 그림자를 비판하는 것이다. 우생학을 비판하는 데 미국의 우생학 프로그램, 독일 나치의 민족 말살 정책 등 그것으로 일어난 비극을 주요 대상으로 삼는 게 일반적인데 곽민준은 대표적인 과학자(또는 과학저술가)를 비판하고 있다. 말하자면 그 뿌리를 잘못된 과학 이해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그는 종종 “과학이란~”, “생물학이란~” 등으로 자신이 과학에 대한 생각을 일반화시킨다. 이 역시 패기 어린 글쓰기다. 비록 틀린 말들은 아니지만, 아직 대학원생이 이렇게 발언하는 것을 보면서 미소가 지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이렇게 자신이 생각하는 과학의 성격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 대견스럽다. 자신이 연구하는 신경유전학의 성과를 역사적인 맥락에서, 사회적인 맥락에 이르기까지 이해하고자 하는 태도 역시 상당히 놀랍다. 이 젊은 연구자가 계속 연구를 계속하더라도, 연구를 그만두고 본격적인 과학 저자가 되더라도, 혹은 연구자로서 과학에 관한 글쓰기를 계속하더라도 의미 있는 성과를 내놓으리라고 믿어본다.
* 한 가지 옥의 티처럼 지적하고 싶은 게 있는데, 유전자의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DNA가 생명의 정보를 담고 있는 것이 밝혀진 게 1934년 알프레드 허쉬와 마사 체이스의 박테리오파지 실험에 의해서라고 쓰고 있다(72쪽). 그런데 허쉬와 체이스의 실험은 1940년대 폐렴구균을 이용한 오스왈트 에이버리의 실험 이후, 1952년에 이뤄졌다. (단순히 몇 년도에 연구가 이뤄졌는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연구의 논리에도 맞지 않아서 굳이 지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