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주경철 교수의 『대항해 시대』를 읽으며 놀랐었다. 우리나라의 역사학자도 이렇게 전 지구적인 범위에서 진지하고 꼼꼼한 연구를 한다는 것에 놀랐다(물론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지만). 몇 년 후에 다시 읽으며 책의 가치를 다시 음미했다(그 후로 주경철 교수의 책은 거의 빼놓지 않고 읽었다).
『대항해 시대』의 문제의식을 발전시켰을 때 그 종착점이 어디가 될 지는 대충 예상할 수 있었다. 15세기에서 18세기에 이르는 시기 서양의 해양 팽창과 그에 대한 응전을 성공적으로 다뤘으니 학자가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더 큰 포부를 가졌다면 해양에 대한 빅 히스토리로 다가가는 것이 이치다(혹은 바다를 벗어나 그 시기의 육상에서의 세력 대결을 다루는 것도 하나의 길이겠으나 그런 연구와 책은 너무나도 많다). 주경철 교수는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고(그건 그간 쓴 책들로 충분히 증명하고 있었다), 당연히 학자로서의 포부도 버리지 않았다. 그 결과가 바로 『바다 인류』다.
인류 역사의 첫 출발부터 21세기의 도전과 기회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바다와 맺은 모든 인연을 다루고 있다. 인류 초기 바다는 비록 공포의 대상이었으나, 또한 기회를 열어주는 공간이자 길이었다는 데서 출발한다. 아프리카에서 기원한 인류는 바다를 넘어 새로운 지역으로 거듭해서 이주를 해왔다. 그 결과 남극을 제외한 전 대륙에 퍼지게 되었다. 다른 동물들의 예를 볼 때 정말 이례적이고 기적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바닷길를 이용하지 않았다면, 바다에서 나오는 물산을 이용하지 않았다면 이룰 수 없었던 ‘업적’이다.
역사 시대 이후 바다는 늘 문명과 함께 했다. 고대 문명들이 모두 강을 끼고 발흥했지만, 강은 또한 바다와 연결을 전제로 했다. 그리고 문명들이 번성하기 위해서는 교역이 필수적이었고, 교역은 바다로 나갔을 때 더 효율적이고, 더 많은 영토와 부를 가져다주었다. 메소포타미아가 그랬고, 인더스가 그랬다.
바다 지배가 세계 지배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준 처음이자 지속적인 사례는 지중해에서 찾을 수 있다. 페니키아의 성쇠가 그랬고, 그리스인들의 해상 활동이 그랬다. 이후 카르타고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로마가 지중해를 재패한 것도 당연히 그런 사례다. 제국의 도시들은 육상에서 번성했지만 그 번성을 뒷받침한 것은 바다였던 셈이다.
아시아 역시 다르지 않았다. 인도양과 홍해를 잇는 교역로라든가, 동아시아-동남아시아의 해양 네트워크는 간과되어 왔지만, 서양이 이 지역을 침략하기 전에도 활발히 작동하던 무대였다. 이슬람 세력의 경우 거의 육상 활동에 집중해서 서술된다. 지중해에서의 해적질(그것도 서양의 시각에서 봤을 때 그런 것이긴 하지만)을 제외하고는 기독교 세력에게 패한 전투만 기록될 정도로 육상 제국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이슬람 역시 바다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고, 다른 세계와 교역하기 위해 노력을 했다는 것이 최근 연구들이 보여주고 있다.
중국의 해상 정책은 많은 해석을 가져오고 세계 역사에 중대한 전환점을 제공한다. 중국의 해상 능력이 출중했다는 것은 명나라 초기 정화의 항해에서 잘 드러난다. 지금도 그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견해가 분분하지만 아프리카까지 항해할 정도로 바다를 제패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했다. 하지만 돌연 강력한 해금(海禁) 정책으로 바다로의 진출을 막게 되었고, 그것은 세계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이에 관해서는 많은 역사가들이 동의하고 있다). 이후 오스만 제국은 바다로의 진출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결국 해양으로의 진출에 성공한 것은 포르투갈, 에스파냐, 네달란드, 영국으로 이어진 유럽 세력이었다. 주경철 교수는 프랑스의 역사학자 피에르 쇼뉘의 “중국인들은 할 수 있었으나 원하지 않았다. 오스만튀르크는 원했으나 할 수 없었다. 포르투갈인들과 에스파냐인들인 원했고 할 수 있었다.”라는 말을 인용하고 있다.
이후의 역사 전개는 주경철 교수가 『대항해 시대』에서 자세히 서술한 내용이다. 포르투갈을 시작으로 콜럼버스의 신세계 발견을 원조한 에스파냐의 활동, 그리고 인도양과 동남아시아의 제해권을 놓고 협력과 갈등, 충돌을 반복한 네덜란드와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세계는 그들 국가들이 지배하는 양상으로 흘러가고 만다. 그동안 그랬으면서도 인식하거나 표현하지 못했던, 바다 지배가 세계 지배라는 인식이 공고화되었다. 주경철 교수는 영국도, 미국도 해적질에서 시작해서 번듯한 해양 세력으로 일어났다고 본다. 제국주의의 이념은 자신들만이 바다를 지배할 수 있는 능력과 자격을 갖추었다는 인식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는 것은 바다였다. 범선에서 증기선으로의 점진적인 전환으로 세계는 더욱 긴밀하게 연결되었고, 글로벌 경제가 성립하게 되었다. 중세에서 근대 초기에 페스트가 많은 인구를 죽였지만, 실제적인 팬데믹은 전세계가 하나로 연결되면서 동시다발적인 감염 사태가 벌어진 19세기의 콜레라였다. 우리는 그 이후 하나의 세계에 살고 있는 셈이다.
현재의 세계가 하나로 연결되었다고 한다면 흔히 하늘길을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전 세계 물동량의 대부분이 바다에서 이뤄지고 있으며, 세계 정보 유통의 98퍼센트가 해저 전선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만큼 아직도 세계를 연결하는 것은 바다이며, 바다의 중요성은 전혀 떨어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그 중요성이 증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열강들(여기서는 미국과 중국이 대표적)이 해군을 지속적으로 증강하고 있다는 데서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 장에서 주경철 교수는 역사학자가 아니라 마치 해양학자, 또는 미래학자가 되는데, 커다란 불안 요소이면서 기회의 공간으로서의 21세기 바다에 대해서 분석하고 있다. 환경 오염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지속적인 남획에 따라 어획량에 계속 감소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바다는 세계 열강들의 경쟁의 장이 되어 충돌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미래 식량, 미래 자원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곳이 바로 바다다.
주경철 교수는 중간에 이렇게 쓰고 있다.
“처음에 낭만주의는 바다를 미약한 인간이 감히 범접하기 힘든 무한의 영역이자 동시에 새로운 자유의 영역으로 그렸다. 곧이어 바다는 아무에게나 열린 게 아니라 깊이 공감하고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들에게만 허락된 숭엄한 공간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 과학과 기술의 힘을 갖춘 서구 세력만이 바다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는 제국주의 이념과 내통하게 되었다.” (620쪽)
그리고 지금은 그 바다가 어쩌면 평등의 공간으로, 또 어쩌면 독점의 공간으로 작용하고 있고, 어쩌면 미래의 강력한 위험 요소로, 또 어쩌면 무한한 가능성의 보고로 여겨지고 있다. 무한한 공포와 무한한 희망이 공존하고 있는 셈이다. 그것은 바다를 어떻게 다루느냐가 인류의 미래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얘기다. 역사는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