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하지 않을 사람에게 권력을 주고 그 권력을 공정하게 행사할 수 있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고,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권력에 관한 가장 유명한 격언 중 하나인 이 말은 1887년 영국의 액턴 경이 교황과 왕에 대한 역사적 책임과 그에 대한 판단이 달라야 함을 강조하는 서한에서 쓴 말이다. 말하자면 이 책의 전반부는 이 말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대한 역사적 고찰이자, 진화심리학적 현실 해석이다.
분명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이 있다. 인류에 위계 질서가 생겨난 이래(인류에게서 시작된 것도 아니다) 누군가는 그 질서의 정점에 서야 했고, 그것을 보다 강력하게 추구하는 사람은 있었다. 그 사람은 주로 집단의 안녕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마음보다는 그저 권력에 대한 향유가 목적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항상 악한 사람이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고 볼 만큼 역사와 현실이 단순하지는 않고(그에 반하는 예가 존재하기에), 편향 때문에 그렇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말이다(브라이언 클라스는 ‘생존자 편향의 오류’를 이야기한다).
또한 권력이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지에 대해서도 복잡한 역사와 현실이 있다. 선한(선하다고 여겨지던) 사람이 권력에 올랐을 때 온갖 악행을 저지른 역사를 우리는 숱하게 봐왔고, 시스템이 사람의 행동을 좌우한다는 진화심리학, 행동경제학의 실험도 무수히 쌓여 있다. 쌀문화냐 밀문화냐에 따라 커피숍에서 의자를 바로 돌려놓는 행동이 달라지고, 국가의 부패 문화가 외교관들이 뉴욕 맨해턴에서의 주차 위반 양상을 좌우한다.
그런데 이러한 권력과 권력자의 관계에 대한 얘기들은, 그것 자체로 흥미로운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의 상식에서 그다지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어쩌면 그다지 인상 깊은 것이 아닐 수 있다. 대신 권력자, 내지는 책임자를 평가할 때 저지르는 인지적 실수에 대한 얘기는 인상 깊다. 즉, 권력자에게는 ‘더러운 손’을 요구한다.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많은 사람의 생명을 좌우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그 권한은 모든 사람을 살리거나 행복하게 할 수 없으며, 희생이 수반할 수 밖에 없다. 그때 권력자는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물론 선택하지 않는 권력자도 있다. 그런 권력자를 우리는 무능하다고 한다). 논란이 많지만 전 태국 총리 아피싯이 그랬고, 애이브러햄 링컨도 그랬다. 처칠은 애니그마의 해독 사실을 숨기기 위해 호주 선박의 침몰을 그냥 지켜보기만 하기도 했다. 그래서 결과만을 보았을 때 대부분 권력자가 내린 결정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만 보이게 되고, 따라서 ‘권력자는 부패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이는 권력에 대한 냉소적 인식만을 가중시킬 우려가 있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몰려온 뉴올리안즈의 고립된 한 병원에서 한 의사의 결정도 그렇다. 그는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살 가능성이 떨어지는 이들을 방치하거나, 혹은 죽였다. 그는 결국 살인 혐의로 기소되었다(나중에 혐의가 취하되었지만). 여기서 브라이언 클라스가 주목하는 것은 그 행위가 옳았는지, 아닌지의 여부가 아니다. 만약 그 의사가 다른 위치에 있었다면? 이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의 위치, 즉 타인의 운명을 결정해야 하는 위치에 있었기에 타인을 해칠 기회도 주어졌다는 것이다. 이것는 권력자에 대한 옹호가 아니다. 오히려 무서운 얘기다. 권력자가 항상 나쁜 인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며, 권력의 본질, 내지는 경향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 경우 우리는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우리는 노예해방을 위한 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뇌물을 쓴 링컨을 비난하지 않는다), 권력자에게 주어지는 그 기회를 감시해야 한다.
그래서 브라이언 클라스는 열 가지의 방법(또는 과제)을 제언한다(브라이언 클라스는 정치학자이기도 하지만 실제 정치 현실에서 선거 참모로도 활약했던 인물이다). 간단히 그 제목만을 언급하면 이렇다.
지원자 풀을 늘리고 선별 과정을 강화한다.
무작위 선출로 감독 기관을 구성한다.
사람들을 순환시켜 부당 거래를 방지한다.
결과뿐만 아니라 의사결정 과정까지 검토한다.
책임자를 자주, 강하게 상기시키는 장치를 만든다.
사람을 추상적인 존재로 여기게 두지 않는다.
‘언제나 지켜보고 있다’는 감각을 준다.
감독의 초점을 지배자에게 맞춘다.
무작위성을 활용해 억지력을 높인다.
‘원칙을 지키는 구원자’를 직접 만든다.
이런 과제들로 권력자를 감시하고 선하게 만드는 게 과연 가능할지에 대해 회의적일 수도 있다. 그 전에 이런 과제를 실현시킬 수 있을지 여부부터 매우 불확실하다. 하지만 이런 과제, 혹은 방법이 적용되는 사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최고 권력자에 대한 예들은 거의 없지만, 그런 성공 사례를 보다 확대하고 심화시키는 것이 우리의 몫인 셈이다.
우리나라는 최고 권력자를 선출하는 선거를 얼마 앞두고 있지 않다. 대통령을 ‘최고 권력자’라고 칭하는 것 자체가 별로 내키지는 않고,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되지만 어쨌든 현실은 현실이다. 어떤 리더를 선택할 것인지, 이 책을 읽으며 더 혼란스럽다. 유력한 이들은 선해 보이지 않는다. 선한 이들도 권력의 자리에 오르면 악해진다는데, 더욱 걱정이다. 하지만 시스템에 따라, 혹은 시민의 감시에 따라 권력의 성질, 권력자의 행위도 바뀔 수 있다는 작은 희망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