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에 대한 찬가가 맛깔 난 글에 실리다

권오길, 『생명의 이름』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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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 선생의 글은 참 맛깔 난다. 책을 분류하자면 교양과학도서 쪽으로 놓일 게 분명하지만 글을 읽도록 하는 것은 과학만이 아니다.


"이 무렵엔 땡볕에 논물이 지글지글 끓어 개구락지도 무논에 들었다가 ‘앗, 뜨거워!’ 놀라 박차고 튀어나온다. 게다가 이 논바닥 저 논고랑 할 것 없이 둥둥 떠 있는 부엽 식물인 개구리밥이 자작자작 잦아든 논물을 퍼렇게 이불처럼 덮었다." (82쪽)


이게 아무 데나 펼쳐서 옮겨 본 단락이다.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의성어와 의태어가 정겹다. 우리 말과 글이 정겹게 들리고 읽히는 데 이런 의성어와 의태어가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 지 알 수 있다.


우리 곁에서 살아가는 식물과 동물에 대해서 많이 썼다. 관념이 아니라 보고, 만지고, 혹은 지켜본 그런 존재들이라, 읽는 것만으로도 나도 그렇게 보고, 만지고, 지켜보는 느낌이 든다. 선생의 어린 시절이 곁들여지면서 나의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게도 된다(비록 연배 차가 많이 나는 만큼 나의 어린 시절이 선생의 것과는 많이 차이가 나지만 말이다).


읽으며 많이 배우지만, 또 많이 잊을 것이다. 느낌만 남을 지도 모르는데 몇 가지 인상 깊은 것만 추려 보면 이렇다.


우선 앞에 인용한 ‘개구리밥’이다. 개구리는 풀을 먹지 않고 살아 있는 벌레만 먹는 육식 동물이란다. 그러니 개구리밥이란 이름은 엉뚱하게 붙여진 셈이다. 권오길 선생은 그 사정을 이렇게 본다.

"그들의 놀이마당인 무논에 개구리밥이 가득하지 않은 곳이 없고, 천방지축으로 떠들썩그리며 물을 휘젓고 다니던 개구리가 물위로 대가리를 쏙 내밀었을 적에, 소소한 개구리밥이 눈가 입가에 더덕더덕 붙은 것을 보고 어림짐작으로 붙였을 터." (83쪽)


고추에 대한 장에서는 ‘청양 고추’에 대해서 한마디 하는데, 여기서 ‘청양’이 충청남도에 있는 청양이 아니란다. 경상북도의 청송과 영양에서 한 자씩 따서 만든 거란다. 전혀 몰랐다.


전혀 몰랐던 것은 이 밖에도 많은데(대체로는 생각도 않았던 것들이다), 그중 하나는 ‘갈등(葛藤)’이란 말에 대한 것이다. 정말 흔히 쓰는 말인데, 이게 식물의 이름에서 온 거란다.

"일상에서 자주 쓰는 갈등(葛藤)이란 말은 한마디로 칡(葛)과 등나무(藤)의 싸움질을 뜻한다." (176쪽)


칡 넌출과 등나무 줄기가 나무줄기를 타고 오를 때 서로 반대 방향으로 나무를 감는다고 한다. 그러니 두 식물이 서로 엇갈려 꼬여지게 마련이다. 이걸 가져다 쓴 말이 갈등이라는 얘기다. 또다시 권오길 선생의 정겨운 글을 옮겨 보면 이렇다.


"이렇게 칡과 등나무는 죽살이치면서 서로 엇갈리게 뒤틀려 상대를 거침없이 짓누르고, 얼기설기 똬리 틀어 자리다툼을 한다."


갈등의 의미가 정말 잘 들어온다.


이것 말고도 정말 생물들의 죽살이에 대한 정겹고 새로운 얘기들이 많은데 그걸 다 옮길 수도 없고, 또 다 기억할 수도 없을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든다. 다시 한번 생각한다. 자연과 생명에 대한 이해는 호기심에서 온다는 것이다. 무엇을 알고자 하는 마음, 거기에 그치지 않고 궁리하고 찾아보고 헤아리는 행동. 이런 것이 선생의 글에 담겨 있다. 가득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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