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몬 지능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마티 헤이즐턴, 『호르몬 찬가』

by ENA
XL.jpg



마티 헤이즐턴은 진화심리학자이면서 다윈주의 페미니스트다. 그녀가 진화심리학자라는 것은 그녀의 박사학위 지도교수가 데이비드 버스라는 것만 봐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녀의 진화심리학은 심리학 쪽보다는 내분비학에 가깝다. 호르몬이 인간의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다. 호르몬과 행동 사이에 심리가 있다. 그리고 그녀가 다윈주의 페미니스트라는 것은, 호르몬과 행동 사이의 관련성을 진화적으로 연구한다는 것이고(진화심리학에서 이미 알 수 있다), 그것을 여성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얘기이다. 이것을 모두 합쳐 보면, 그녀가 말하는 호르몬은 여성의 호르몬이며(당연히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이 중심이다), 그 호르몬이 여성의 심리와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다는 얘기이다. 그리고 그 영향은 진화적으로 형성되어 왔다.


그런데 호르몬에 의한 여성의 심리, 행동에 관한 연구라고 하면, 오히려 반(反)페미니즘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왜냐하면 호르몬에 의해서 여성의 심리와 행동이 결정되고, 또한 그것이 가정과 사회에서의 역할 제한에까지 결론이 이르는 것을 흔하게 봐왔기 때문이다. 마티 헤이즐턴도 책의 서두에 그런 우려부터 한다. 여성의 호르몬에 대한 연구가 발정난 여성, 혹은 남성에 종속된 수동적인 여성을 기정사실화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실은 비판, 비난)를 받아온 게 사실이라고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호르몬에 대한 잘못된 고정 관념이 오히려 여성에 대한 오해와 성차별로 이어졌다고 주장한다. 호르몬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 그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바로 앎으로써(즉, 호르몬 지능을 갖춤으로써)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까지도 성(性)에 대해 올바르게 인식하고, 인간으로써 자유를 누리고 살 수 있다는 것이다.

KakaoTalk_20220328_144058331.jpg


오랫동안 인간은 ‘가임기’를 감추고 있는 거의 유일한 포유동물이라 여겨져 왔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기도 하다(적어도 겉으로는). 그럼에도 배란 주기에 따라 신경질적이 되는 여성이라는 편견, 내지는 비아냥을 낳아왔다. 이 모순된 상황이야말로 여성의 호르몬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마치 헤이즐턴은 우선 여성의 호르몬 주기에 대해서부터, 그리고 각 호르몬의 역할에 대해서부터 이야기한다. 그런 다음 가임 고조기에 여성이 다른 행동을 한다는 것을 실험적으로 밝혀낸다. 즉, ‘배회하는’ 행동이 증가하며, 좀 더 노출이 많은 의상을 선택하며, 여성에 대해서도 좀 더 경쟁적이 되는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여러 다른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결과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결과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는 더 많은 자손을 가지기 위한 본능적인 행동이기도 하지만 여성이 선택의 폭을 넓히고 바른 선택을 하기 위한 진화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저 본능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본능을 이용한 선택의 자유를 위한 행동이라는 얘기다.


그밖에도 마티 헤이즐턴은 약으로 호르몬 주기를 변경시키거나, 임신 중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바로 이해하고, 또 피임의 원리와 피임약 종류에 따른 심리와 행동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 등등에 대해서 최신의 연구 결과를 소개하고, 그 의미를 설명함으로써 우리가(여기서 우리는 여성을 더 많이 포함하겠지만, 남성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 더 현명하게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생각하도록 한다.


사실 이 주제는 매우 민감한 주제다. 연구 결과가 매체에 보도되는 빈도도 매우 높다. 그럴 때마다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여성이란 그런 존재’라며 비아냥거리는 반응도 나오고, 페미니즘 쪽에서도 반론이 나오기도 한다. 그저 재미있는 아마추어 과학이라는 반응도 나온다(진화심리학이라는 학문이 처해 있는 위치가 그렇게 탄탄한 것 같지는 않다는 게 내 짐작이다). 그런데 마티 헤이즐턴은 제대로 아는 게 일단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연구 결과는 어느 한쪽의 손만을 들어주는 게 아니다. 인간으로서 진화해온 방향을 설명하고 있으며, 이제 우리는 그것을 알게 됨으로써 그 연구를 이용하여 방향을 설정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아직도 배울 것이 많이 남아 있으며, 그것들을 알아갈수록 더 풍요롭게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서로 다른 신, 그러나 비슷한 종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