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파이브(The Five)”. 다섯 여인이 있다. 1888년 8월부터 11월까지 영국 런던의 빈민가에서 ‘잭 더 리퍼’에게 살해당한, 혹은 살해당했다고 여겨지는 여인들이다.
잭 더 리퍼. 살인자에게 붙여진 별명이다. 붙잡지 못했으니 누군지 모르고, 그래서 별명만 남았고, 그는 신화화되었다. 우리는 살인자가 누군지 모르니 별명으로 부르고, 피해자는 누구인지 밝혀졌으나 그들의 이름은 불리지 않는다. 기묘한 상황 같지만, 한국에서 90년대, 2000년대에 벌어진 연쇄살인 사건에서도 그 비슷한 현상이 벌어졌다.
잭 더 리퍼. 그 별명 앞에는 가끔 ‘매춘부 살인마’라는 수사가 붙기도 한다. 이 역시 살인자를 영웅시하는 심리를 포함하고 있으며, 또한 피해자들이 바로 개인이라는 사실을 잊게 한다. 그렇게 규정된 피해자들로 야릇한 상상을 하게 하지만, 누구도 그 피해자들이 어떤 인물인지 궁금해하지 않게 하는 역할도 했다. 그저 살인자에 대한 상업화에 일조할 뿐이다.
핼리 루벤홀드는 누군지도 모르는 살인자를 제쳐두고 바로 그 다섯 여인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떻게 바로 그 살해 현장에 있게 되었는지를 추적했다.
폴리, 애니, 엘리자베스, 케이트, 메리 제인.
그들은 대장장이의 딸이었고, 군인의 딸이었으며, 스웨덴으로부터 이주해온 이주민이었고, 커피하우스의 여주인이었다. 또한 아이들의 엄마였으며, 형제 자매가 있었다. 처음부터 삶을 포기하고자 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부유한 삶은 아니더라도 조금이라도 안락한 삶을 원했으며, 그래서 온갖 노력을 다했다. 그러나 세상이 허락하지 않았다. 중산층으로 올라가는 사다리에서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구렁텅이로 떨어져 버리는 시대였다. 남편이 죽거나, 실직하거나, 혹은 아이를 너무 낳거나 등등. 나락으로 떨어지는 건 순간이고, 또 지속적인 과정이었다. 거기에는 다시는 거슬러 올라가지 못하는, 커다란 장벽이 놓여져 있었다. 그들이 그 살해 현장에 있게 된 것은, 누군가가 문제였지 필연적인 것이었다.
그들 중 많은 이가 술독에 빠진 것도 사실이고, 경찰서 신세, 나아가 감옥까지 갔었다. 그리고 매춘부는 아닐지라도 매춘의 범주 가까이에 든 일도 있었다(매리 제인은 실제로 매춘부이기도 했지만). 하지만 주목해야 할 것은 그들이 어떻게 거기까지 이르게 되었는가이며, 또 왜 사람들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들을 믿으며 단순하게 “매춘부 살인마 잭 더 리퍼”라는 신화를 써내려가게 되었는가이다.
핼리 루벤홀드는 이 논픽션에서 잭 더 리퍼라는 존재를 거의 드러내지 않고 있다. 다섯 여인이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서 거의 쓰지 않고 있는 것이다. 거의 대부분은 다섯 여인의 삶의 족적을 따라가고 있으며, 그들이 죽는 순간까지 다루고, 짧게 그 이후 그들의 가족이나 언론의 반응을 남길 뿐이다. 누군지도 모르는 살인자와 그의 수법은 언급하며 더욱 그를 신화화하는 게 아니라 그 나쁜 놈에게 희생된 이들의 삶과 그들이 살다간 사회의 처참함을 고스란히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