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사학자 이영석은 자신이 관심을 갖고 읽은 역사가들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나라 인물 둘을 포함하여 모두 열두 명의 역사가다(사실 이순탁은 경제학자이지 역사가라고 할 수는 없다. 역사에 관한 책을 쓴 것도 아니었다). 대부분 영국을 매개로 하고 있는 역사가들이다. 영국에서 태어난 영국 국적의 연구가이거나 영국에서 대학을 나오고 영국을 중심으로 활동하였거나 혹은 미국의 대학으로 적을 옮겼더라도 주로는 영국의 역사에 대해 연구한 이들이다(예외라 한다면 우리나라의 역사가의 노명식 정도다. 그는 주로 프랑스의 역사를 연구했다).
이런 영국 중심의 역사가를 소개하고 있는 것은 이영석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그가 생전(그는 2022년 2월 14일 별세했다) 주로 연구한 분야가 영국의 근대였으니 말이다. 그의 독서가 아무리 폭넓었다 하더라도 깊이 읽은 역사가들은 아무래도 제한이 있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소개하고 있는 역사가들을 면면을 보면 그렇게 좁은 범위가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다. 세계를 지배할 만큼 영국의 근대가 버라이어티했다는 점과 더불어 그 역사를 연구한 연구자도 많았고, 따라서 새로운 관점에서 역사를 해석함으로써 명성을 떨친 역사가도 많았던 셈이다.
그가 소개하고 있는 열두 명의 역사가들은 다음과 같다.
풍경에 대한 고찰을 역사의 영역으로 들여온 윌리엄 호스킨스
귀족 사회의 위기와 가족과 성, 결혼과 이혼의 사회사 등 사회사의 지평을 넓힌 로렌스 스톤
막대한 생산량을 자랑하다 50대 초에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또 죽어버린 신화적인 역사학자 로이 포터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을 통해 계급을 다시 정의 내린 에드워드 톰슨
19세기의 역사, “~이 시대” 3부작으로 세계적 명성을 떨친 에릭 홉스봄
영제국의 세계 지배를 옹호하고, 미제국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하여 미국 보수주의자들의 스승이 된 니얼 퍼거슨
귀족의 몰락에 대한 저술과 함께 비평가이자 컬럼니스트로 명성을 떨친 데이비드 캐너디언
BBC의 역사 다큐멘터리로 영상으로의 역사 분야를 개척한 사이먼 샤마
‘감성의 역사’라는 새로운 형식의 역사 서술을 추구한 시오도언 젤딘
“도전과 응전”이라는 역사 개념으로 유명하며, 지구사 서술의 시초가 된 아놀드 토인비
명실상부 한국인 최초의 세계여행기를 통해 식민지 지식인으로서 세계, 특히 유럽을 기록한 이순탁
한국 1세대 서양사학자 노명식
이들에 대해 총체적으로 소개하고 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대표적인 저서를 중심으로 내용을 소개하고 그 의의를 평가하고 한계점도 함께 피력하고 있다. 이를테면 에드워드 톰슨의 경우에는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을 중심으로, 니얼 퍼거슨의 경우에는 『제국』, 데이비드 캐너디언의 경우에는 『영국 귀족의 쇠퇴와 몰락』, 아놀드 토인비의 경우에는 (당연하게도) 『역사의 연구』를 중심으로 쓰고 있다. 에릭 홉스봄의 경우에는(최근 에릭 홉스봄의 평전을 읽었기에 더욱 관심이 많았으나), 그의 가장 큰 업적이라 할 19세기에 대한 저서가 아니라 20세기에 대한 저서인 『극단의 시대』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사이먼 샤마에 대해서는 주로 그가 진행한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를 소개하며 ‘영상으로서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어떤 이에 대해서는 가장 대표적인 저서를 중심으로 읽고 있고, 또 어떤 이에 대해서는 역사가 이영석이 관심을 가진 분야, 혹은 색다른 의미를 지닌 분야를 중심으로 역사가를 읽고 있는 것이다.
이영석은 이들 역사가들의 책을 역사 연구를 위한 자료가 아니라 흥미를 느껴 읽었다고 했다. 그래서 별로 관련성도 없는 역사가들이라고 하고 있고(그래도 독자 입장에서는 관련성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는 역사가들이지만), 전문 역사논문을 통해서 역사가를 살피기보다는 대중들에게 호응을 받은 역사서를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나를 비롯한 독자들은 별로 큰 문턱 없이 이 역사가들에 대해 알 수 있고, 또 더 진전된 독서로도 이끌 수 있을 것 같다.
앞에서도 밝혔지만 그는 올해 2월에 돌아가셨다. 역사학자로서의 삶을 돌아본 『삶으로서의 역사』를 읽은 게 4월 초였는데, 그땐 돌아가신지 몰랐던 때였다. 또한 재작년에 읽은 『전염병, 역사를 흔들다』를 그가 번역한 줄도 모르는 상태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검색하다 그가 돌아가신 걸 알았다. 그 사실에 내게 어떤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왠진 숙연해진다. 이 책의 마지막 문구가 선배 역사가 노명식의 명복을 비는 것이어서 더욱 그렇다. 이제 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