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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넬라(Legionella) 3

레지오넬라와 사람들

by ENA

그렇다면 레지오넬라균을 배양할 수 있는 배지를 개발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바로 CDC에서 실험실 테크니션으로 일하던 조지 고먼(George Gorman)과 제임스 필리(James Feeley) 박사였다. 그래서 이 배지를 F-G(Feeley-Gorman) 배지라고도 부른다. 이 사람들의 이름을 따라 붙여진 세균이 있다. 레지오넬라 속에 속하는 Legionella gormanii와 Legionella feeleii라는 세균이다. Legionella gormanii는 1980년 토양에서 분리된 세균에, Legionella feeleii는 1983년 자동차공장에서에서 집단 발병한(집단 발병은 1981년) 폰티악열 환자로부터 분리한 세균에 붙여진 이름이다. 재미있을 수도 있고, 당연하달 수도 있는 것은 Legionella gormanii를 발표한 논문에는 제임스 필리가 저자로 들어가 있지만 조지 고먼은 없다. 반대로 Legionella feeleii가 발표된 논문에서는 제임스 필리가 빠지고 조지 고먼은 저자로 참여했다.


레지오넬라 속에 속하는 세균 중에는 Legionella bozemanae와 Legionella dumoffii라는 이름을 가진 세균이 있다. 여기에 이름을 남긴 사람은 마릴린 보즈먼(Marilyn Bozeman)과 모리스 듀모프(Morris Dumoff)이다. Legionella pneumophila를 찾아낸 이후 CDC의 과학자들은 이 속에 속하는 세균들을 많이 발견하였다. 이 때 세균들에 어떤 이름을 붙일까 고심하다 상당히 기특한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 이름에 기초해서 세균 이름에 붙일 때, 고명한 과학자나, 혹은 조직의 수장의 이름을 먼저 떠올리게 마련인데 이번에는 CDC에서 레지오넬라 뉴모필라를 발견하고 감염 경로를 밝히는 데 공로를 세운 연구원 중에서도 말단 연구원의 이름을 붙이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공모 끝에 결정된 인물이 바로 마릴린 보즈먼과 모리스 듀모프였다. 이들은 박사 학위를 갖지 않은 연구원이었고, 논문에 이름을 올리더라도 제1저자나 교신저자와 같은 주저자가 아니라 저자 명단 중간에 들어가는 공동저자로도 만족해야 하는 처지였다. 하지만 그들의 이름은 Legionella bozemanae와 Legionella dumoffii와 같은 세균의 이름에 영원히 남게 되었다(Legionella bozemanae는 처음에는 Legionella bozemanii로 명명되었다가 나중에 지금의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라틴어의 성에 따른 어미가 잘못되었던 것이고 이게 정정된 것이다).


레지오넬라 속에는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세균이 하나 있다. Legionella shakespearei라는 세균인데,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 그 셰익스피어에서 온 이름이다. 난데없이 세계적인 작가 셰익스피어의 이름이 세균의 학명에 들어가게 된 사연은 무엇일까? 셰익스피어가 세균학에 어떤 공헌을 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은 없다. 그렇다면 세균을 발견한 사람이 셰익스피어 애호가라서? 그랬을 수도 있을 것 같지만 확인은 되지 않는다. 혹은 저자가 셰익스피어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그것도 알 수 없다. 저자들에 세균의 학명을 제시할 때는 논문에서 그 이유를 제시하게 되는데, 셰익스피어의 이름을 쓴 이유로 세균이 스트랫어펀에이븐(Stratford-upon-Avon)에서 분리되었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바로 스트랫어펀에이븐은 셰익스피어의 고향이다. 그러니까 이름을 상상하는데 한 단계를 건너뛰는 셈이다. 창의적이랄 수도 있고, 혹은 조금 세균과는 관계가 없는 이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재미있는 학명이다.


조지 고먼 (George Gorman 왼쪽)과 제임스 필리(JamesFee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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