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에 이어 이번엔 북촌이다. 하지만 서촌과 북촌을 잘 가르지도 못하는 형편이니 큰 의미는 없다. 또 서촌 편과 북촌 편이 내용상 크게 다른 것도 아니다. 북촌이나 복촌 인근에 살았거나, 혹은 북촌을 중심으로 활동한 화가, 예술가 들 이야기지만 북촌이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서촌 편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북촌 편을 읽으면서 서촌 편가 달리 깊게 인상이 박히는 것은 두 가지 있다. 그중 첫 번째는 화풍이랄까, 그림의 소재랄까 하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상한 작품들을 보면 거의가 한국의 원초적 풍습이라든가 소박한 풍경을 담은 작품들이 많다는 것을 실감한다. 식민지 조선의 암울함이라든가 진취적 기상 같은 걸 담은 작품은 찾아보기 힘들다. 일제가 조선인 화가들에게 어떤 걸 원하고 고취시켰는지를 알 수 있다. 그렇지 않은 화가들도 있었지만, 많은 이름난 화가들이 일제의 의도를 충실히 지키면서 명성을 얻었고, 유지했다. 그런 이들 중 적지 않은 이들이 또한 1930년대 후반, 1940년대에 적극적인 친일파로 활동하기도 한다.
또 한 가지는 월북한 화가들이 꽤 많았다는 사실이다. 이석호, 길진섭, 최재덕, 임군홍, 그리고 서촌 편에서 다루었던 이쾌대 같은 화가들이다. 이념적인 이유로, 혹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월북했던 화가들은 오랫동안 남쪽에서는 잊혀진 이름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을 빼놓고 보면 근대 미술사가 너무 허술해보인다는 것이 이 책을 쓴 황정수의 생각이다. 그건 친일파로 몰린 화가들에 대해서도 적용하는 것인데, 사실 친일파로 손가락질 받는 화가들은 대체로 해방 이후 오랫동안 인정을 받아왔던 이들이기 때문에 그들을 손가락질 한다고 해서 우리의 근대 미술사에서 그다지 공백을 만들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월북한 이들의 작품 세계는 이제야 연구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긴 것이 사실인 듯하다. 물론 아직도 조심스럽지만 말이다.
북촌 편에서 가장 인상 깊은 이를 들라면, 운보 김기창과 최초의 유럽 유학 화가이자 판화가 배운성, 죽음으로 예술을 완성한 조각가 권진규다. 운보 김기창은 장티푸스로 청력을 잃고도 각고의 노력으로 최고의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배운성은 유럽을 거쳐온 한국의 화가가 아니라 유럽에서 인정을 받은 화가라는 점에서, 그리고 권진규는 그가 무사시노 미술대학이 선정한 졸업생 중 최고의 조각가로 선정되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림으로 가장 인상에 박히는 것은 김진우가 여운형의 회갑 기념으로 그린 <괴석>이고, 글씨로는 김충현이 중동학교 시절 쓴 글씨다. 그림은 자유로운 걸, 글씨는 단정한 게 좋아 보인다. 개인적인 취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