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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어와 신조어가 그리는 사회

금정연, 『그래서... 이런 말이 생겼습니다』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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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어와 신조어를 다룬다고? 사전 같은 건가? 좀 나이 든 이에게(나 같은?)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양을 알려주고, 젊은 축에게는 어떤 일종의 쾌감 같은 걸 주기 위한 책인가? 책의 무게 만큼이나 묵직한 이야기는 아닐 거라 예상했다.


아니, 웬걸. 책은 예상 밖으로 진지하고 진중하다.

잠깐 생각해보니 내 예상이 애초에 잘못된 근거에서 이뤄진 것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유행어나 신조어가 가볍게 쓰이는 만큼 그 말들이 쓰이는 사회나 시대 역시 가벼울 거라 생각했던 것, 그 사회와 시대를 바라보는 시각마저 가벼울 거라 생각했던 것. 생각이 짧았다.


유행어와 신조어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은 사회를 기본적으로 횡으로 잘라 파악하는 행위다. 그러나 그 횡적 분석이 쌓이면 종적인 분석이 된다. 결국 유행어와 신조어는 사회를 상당히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소재가 되는 셈이다.


줄인 말들이 많다. ‘존버’, ‘취준생’, ‘가성비’, ‘국룰’, ‘스불재’, ‘워라밸’, ‘인싸’, ‘많관부’, ‘휴거, 엘사, 빌거’, ‘한남’ (모르는 말이 있는가? 모르는 말은 검색해보면 금방 나온다.) 개인적으로 이런 식의 말줄임을 별로 탐탁치 않아 하고 자주 쓰지도 않지만(잘 모르는 탓도 있을까?), 이 말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현재의 우리 사회가 무엇에 관심을 갖고 있는지를 이처럼 적절하게 알려주는 것도 없어 보인다. 그저 단순한 말줄임이 아니라, 그 말이 왜 많은 사람들이 쓰고 있으며, 또 인식을 하고 있겠는가? 바로 이 사회의 민낯을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 아닌가? 대체로는 씁쓸하게.


참 쓸쓸하고, 안타까운 말들이 많다.

앞서의 줄임말 말고도, ‘금수저, 흙수저’, ‘틀딱’, ‘맘충’ 같은 말은 생각해보면 어쩜 이리도 잔인할까 싶다(‘맘충’이 들어 있는 『1982년생 김지영』을 외국에서 번역하면서 정말 이런 말이 한국에서 쓰이는지 경악했다고 한다). 개인적인 이것들보다 더 처절하게 다가오는 말은 ‘휴거, 엘사, 빌거’라는 말인데, 나는 이게 무얼 뜻하는지 몰랐었고, 짐작도 못했다. 내가 알고 있는 ‘휴거’는 이미 오래 전에 유행했던 말인데... 하는 생각만 했을 뿐이다. 그런데 에게 ‘휴먼시아+거지’ (LH 임대아파트에 사는 아이들), ‘LH에 사는 아이’, ‘빌라+거지’라는 설명을 읽고는 아연했다. ‘틀딱’이나 ‘맘충’도 마음이 아프지만 그래도 그건 세상을 꽤 살아온 어른들을 비하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 아이들이라니... 그들에게 무슨 책임이 있다고... 말을 이을 수가 없다.


예전부터 있던 말도 있지만, 그 쓰임새가 달라진 말도 있고, 최근에 더 많이 쓰게 된 말들도 있다. 역시 사회가 소환한다는 점에선 다를 바 없다.


다 읽고, 이제 최신 유행어를 장착하게 되었다는 안도감은 전혀 없고(대부분은 쓰지 않았으면 하는 말들이다), 마음이 많이 무거워졌다. 저자의 프리랜서 작가로서의 다소 과잉인 자의식 역시 그런 무거운 마음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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