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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친구들

안드레아스 바를라게, 『선량한 이웃들』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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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저자의 독일처럼 보통의 경우 정원을 가꾸며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일종의 로망이기도 하고, 이룰 수 없는(적어도 이루기 힘든) 꿈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이 책이 소수를 위한 정원 가꾸는 법을 알려주는 책은 아니다. 정원에 사는 생물들의 습성을 기록하고, 그 생물들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고 있는 책이니 말이다. 정원에 사는 생물에 대한 애정은 확장되어 이 지구에서 인간과 함께 진화해온 생명체들에 대한 애정이 되고 있다.


그의 정원에서는 나이팅게일이 노래하고, 반딧불이 빛을 내고, 낮에는 숨어 있던 올빼가 밤이 되면 모습을 드러낸다. 나비가 색색의 날개를 펄럭이며 다니고, 나방도 칙칙한 날개를 퍼덕이며 불빛을 향해 날아든다. 풍뎅이가 있고, 꿀벌과 뒤영벌이 붕붕 거린다. 연못이 있어 물고기를 키울까 말까 고민을 하고, 공작도 키울 수 있을지 가늠해본다. 박쥐나 설치류가 정원에서 살 수 있게 할 방법을 찾는 모습은 본능적으로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이유를 잘 들어보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지렁이가 기어다니고, 개미들이 모여 사는 정원이 깨끗하게 정돈된 것은 아니지만, 그는 정돈된 정원보다 어질러진 정원을 선호한다.


그는 ‘정원에서는 식물과 다양한 작은 동물, 그리고 인간이 운명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생태계가 생명체 각자가 제 몫을 적절히 할 때에 잘 유지하는 정원에서도 마찬가지라 여긴다. 인간이 결정권자로서 모든 것을 절대적으로 만들어나가기보다 어느 정도는 내려놓고 타협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지러운 식물의 잔해가 다른 어떤 생명체에게는 쓸모 있음을 이해하는 것, 이것은 정원을 넘어서 적용될 수 있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사랑하는 생물들이 살아가는 정원은 비록 인위적인 것이지만, 그의 정원은 될 수 있으면 생물들이 제각기 자신들의 역할을 스스로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원하지 않는 동ㅁ루이나 식물이 정원을 잠식해 오더라도 바로 약물로 제어하기 보다는 생물들 사이의 관계를 통해서 서서히 해결되기를 바란다. 물론 어쩔 수 없는 경우엔 화학 약품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우선 무엇부터 고려하느냐가 바로 자연과 생명에 대한 관점인 것이다.


이 책은 정원을 갖고 동식물을 가꾸는 이들에게 필요한 책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이들이라면 정원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나만의 정원을 상상하며 즐거이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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