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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최고의 과학 논문들을 읽다

앨런 라이트먼, 『과학의 천재들』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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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순 교수가 “추천사”에서도 적었듯이 인문사회 분야의 지식을 습득하는 방식과 과학 분야의 지식을 습득하는 방식은 좀 다르다. 인문사회 분야의 경우에도 논문이나 명저를 정리해 놓은 책을 읽는 경우도 상당히 많지만, 가장 좋은 방식은 원저를 읽는 것이라 한다(번역도 포함해서). 하지만 과학 분야의 경우에는 그런 경우가 거의 없다. 특히나 과학 교과서나 교양서나 모두 과학적 지식의 내용이나 발전을 아주 매끄럽게 서술하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그러니까 우리는 주로 과학을 해석된 지식으로 배우는 경우가 매우 많다(물론 전문 과학자가 자신의 분야 논문을 읽는 경우는 제외하고).


사실 읽기가 힘든 경우도 많다. 이를테면 뉴턴의 『프린키피아』가 최고의 명저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읽는 사람은 매우 한정될 수 밖에 없다. 물리학에 관심이 좀 있다고 그것을 읽을 필요도 없다. 더군다나 20세기의 세분화되면서 고도화된 과학 논문은 조금이라도 분야가 다르면 설령 과학자라고 하더라도 읽고 이해하는 것이 매우 힘들다. 생물학을 전공한 내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에 대한 논문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일이고, 생물학 전공이지만 더 세분해서는 미생물을 전공한 내가 베일리스와 스탈링의 호르몬 발견에 관한 논문을 읽는 것 역시 쉽지 않다. 다만 호르몬에 관해서 그들의 발견과 의미, 그리고 이후의 발전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은 그래도 할 만한 일이다.


그래도 원래의 논문은 중요하다. 바로 우리의 과학 지식이 거기서 나왔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잘 이해하지 못할지 모르지만, 이해하는 사람이 있었고, 거기서 중대한 의미를 찾아낸 이들이 있었다. 그것을 바탕으로 연구 아이디어를 얻고, 이후의 연구를 수행한 이들이 부지기수다. 그들의 논문은 중요하다.


다시 말하지만, 그들의 논문을 그대로 다시 읽을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그것을 다시 읽는 사람은 필요하다. 그래서 그들이 어떤 환경과 배경에서 연구를 수행했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서 연구 결과를 얻었고, 그 연구 결과를 어떻게 해석했는지, 그리고 이후에는 어떤 연구들이 이어졌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우리가 지금 받아들이는 것과는 다른 배경에서 연구가 수행된 경우도 허다하고, 그 논문의 해석이 지금의 해석과 다른 경우도 적지 않다. 그렇다 해서 그들의 논문을 폄훼할 수는 없지만, 그 과정을 이해하는 것 역시 과학을 이해하는 중요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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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이자 소설가이기도 한 앨런 라이트먼은 20세기의 중대한 발견을 기록한 22편의 논문을 선정했다. 그것 자체가 일이었을 것이다(스스로는 “눈물이 차올랐다”고 표현하고 있다). 물리학과 화학, 천문학 그리고 생물학의 논문들이다. 1900년 막스 플랑크의 양자에 관한 논문에서 시작해서 1972년 폴 버그의 유전자 재조합에 관한 논문까지다. 해당 연구의 배경을 설명하고 있고, 논문 저자, 그러니까 과학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논문을 설명한다. 그런 다음 논문을 덧붙이고 있다(내게는 어색한 것이 논문이 번역되어 있는 모습이다. 나는 과학 논문을 그렇게 본 적이 없어 그렇다). 연구의 배경은 포괄적이고, 과학자에 대한 얘기는 늘 그렇듯 흥미롭다. 논문에 대한 설명은 친절하다. 다만 논문 자체는 다 읽지를 못했다. 개인적으로 ‘읽을 수 있는’ 생물학 관련 논문만 그래도 읽을 수 있었다. 다른 건 서문과 결론 정도? 그 정도로도 그 논문이 어디에서 나와서 어디를 향하는지 알 수 있다.


이러한 형식은 20세기 과학의 흐름을 다소 파편적이기는 하지만, 어느 한 부분을 정밀하게 관찰할 수 있도록 한다. 러더퍼드가 원자핵을 발견하는 순간에 대해서, 오토 뢰비가 신경전달물질을 찾아내는 과정에 대해서, 막스 페루츠가 헤모글로빈을 통해 단백질 구조를 밝혀내는 지난한 세월에 대해서, 펜지어스와 윌슨, 디키가 우주배경복사를 찾아내고 해석하는 우연적 사건에 대해서. 우리는 주로는 이 이야기들을 서로 다른 과학 교양서에서 접했지만, 여기서는 20세기 과학의 중대한 발견을 이룬 논문의 배경으로 읽을 수 있다.


사실 이 책의 제목 번역 “과학의 천재들”은 별로 이 책의 내용을 잘 설명하지 못한다. 물론 천재들이 있다. 이를테면 아인슈타인이 그렇고, 러더퍼드, 닐스 보어, 하이젠베르크, 라이너스 폴링, 왓슨과 크릭 같은 이들이 그렇다. 하지만 그들도 서로 다른 특징을 가진 천재였으며, 천재라고 하기에는 지난한 노력이 위대한 발견으로 이어진 경우도 많다. 대표적으로 한스 크렙스, 막스 페루츠 같은 이들이다. 그리고 우연적 발견이 위대한 발견으로 이어진 경우도 적지 않다. 막스 플랑크의 양자 발견이나, 베일리스와 스탈링의 호르몬 발견, 알렉산더 플레밍의 페니실린 발견, 펜지어스와 윌슨의 우주배경복사 발견 등은 모두 그들이 원래 계획했던 연구에서 의도한 대로 이뤄진 결과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이 관찰한 것에 대한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진지하게 해석하고자 했기에 그런 위대한 발견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2000년대의 과학적 발견에 대한, 이런 종류의 책이 나올 수 있을까 궁금하다. 다소 회의적인데, 막스 페루츠에 대한 장에서도 쓰고 있듯이 최근에 크게 인정받는 과학 논문의 경우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거대과학인 경우가 많으며, 그래서 저자가 많다. 그리고 매우 전문적이어서 한 논문이 과학 전체를 ‘확’ 바꾸는 경우는 드물다. 그렇다면 여기에 소개한 과학적 발견과 논문은 과학이 낭만적일 수 있었던 시대의 마지막 기록이지 않을까 싶다. 다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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