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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사람, 시간, 그리고 공간

정수복, 『책인시공』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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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하루를 책읽기와 관련해서 써볼까 한다.

일어나면 조금 정신 차릴 시간을 갖고 책상에 앉아 책을 읽는다. 아내가 일어나고 아침을 먹기 전까지, 언제 일어났는냐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 책을 읽는다. 어젯밤에 읽다 남겨둔 부분을 읽거나, 어젯밤 책을 마지막까지 다 읽었다면 무얼 읽을지 생각해둔 책을 책꽂이에서 꺼내 읽는다.


출근한다. 나는 출근 거리가 꽤 된다. 기차를 기다리며, 기차를 타고서 책을 읽는다. 잠깐 졸기도 한다. 출근한 후에는 당연히 책을 거의 읽지 않는다. 비록 책을 읽는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는 직업이지만 그래도 내 사무실에서는 특별한 경우 아니고는 책은 읽지 않는다(‘책’이라고 한 것은 내 직업과 관련한, 전공책을 제외한 책을 의미한다. 물론 전공 관련한 책은 읽어야 한다). 그러나 독후감(혹은 도서 리뷰)를 쓸 때도 있다. 어젯밤에 다 읽었거나, 출근길에 다 읽은 책이 있는 경우에.


퇴근하면서 책을 읽는다. 출근할 때와 반대 방향이므로 거의 비슷한 시간이 나한테 주어진다. 기차를 기다리며, 기차를 타고서 책을 읽는다. 잠깐 졸기도 한다. 퇴근 후에는 저녁 식사 후 책을 읽는다. 이때는 야구 중계를 틀어놓고 책을 읽는다. 야구 중계는 중요한 순간이 아니면 무음이다. 야구는 쉬는 시간이 많다. 책을 읽을 여유가 충분히 있다. 더 늦은 저녁이면 책에 관한 글을 쓰기도 하고, 논문이 아닌 다른 글을 쓰기도 한다. 자기 전에 책을 읽는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하루 종일 책만 읽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당연히 책 읽는 시간보다 일하는 시간이 많고, 또 자는 시간보다 많을 수는 없다. 다만 책이 내 근처에 없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뿐이다.


어디서 책 읽는지도 생각해본다. 어디서든 읽는다. 이미 얘기한 책상에서나, 기차를 기다리며, 기차를 타고서, 소파나 침대에 누워서 읽는다. 그리고 버스에서도 읽고, 카페에서도 읽는다. 비행기에서도 읽고, 당연히 호텔방은 책 읽기에 정말 좋은 곳이었다. 책 읽지 못할 장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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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얘기지만, 정수복의 『책인시공』의 내용이기도 하다. 어디서든, 언제든 책을 읽는 이의 얘기다. 다만 그에게는 프랑스의 서점과 도서관 얘기가 있다. 과거에 주로 학회 참석차 미국의 도시에 갔을 때 꼭 서점을 들르긴 했었다. 지금은 하지 않는다. 대신 미술관을 들른다.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영어로 쓰인 책은 전공책이 아닌 경우 읽는 속도가 너무 느려서다.


책을 사랑한다기보다 책읽기가 삶인 사람의 이야기다. 그런 이들이 얼마나 있는지 잘 모른다. 아직 많이 남아 있기를 바라지만,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만큼은 누구나 동의한다. 누군가는 멸종 위기라고까지 했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절대 멸종하지는 않을 거라고. 적어도 인류의 멸종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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