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명화에 대한 책에서 욕망을 이야기한다. 여기서 욕망은 화가들의 예술혼에 입각한 욕망도 없진 않지만, 중심은 화가들과 미술품들을 둘러싼 세상의 욕망이다. 그림들이 어떻게 인정받고, 어떻게 명화가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며, 시기에 따라 어떤 그림이 명화로 인정받게 되었는지에 대한 지극히 ‘세속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미술에 관한 비즈니스에 관한 책이다.
16세기 종교개혁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종교개혁으로 미술가들의 밥줄이 끊길 뻔했다. 로마 카톨릭 교회에 반기를 든 개신교는 우상숭배를 강력하게 배척하며 교회 미술을 탄압했다. 그 중심이 되는 국가가 네덜란드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네덜란드에서 근대 미술의 꽃이 피기 시작했다. 페르메이르가 나오고, 렘브란트가 나왔다. 미술을 구매하던 교회와 왕실이 사라진 네덜란드에서 새로운 미술품 구매계층이 탄생한 것이다. 바로 상인 계층이었고, 그들로 인해 풍경화와 인물화라는 새로운 미술 장르가 등장했다. 왕족이나 귀족이 아니더라도 그림이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페르메이르는 심지어 하녀를 그림의 주인공으로 그렸다. 네덜란드의 미술은 자본주의의 탄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천재 중의 천재 다빈치도 미술과 비즈니스의 관계에 비껴갈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살 주인을 끈질기게 찾았고(미술은 맨 마지막 재능이었다), 이 나라 저 나라를 오가다 끝내 프랑스에서 안식처를 찾고, 거기서 생을 마감했다. 저자는 다빈치의 예술가로서의 행보를 쫓아가며 그의 재능이 그의 시대와 불화했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렘브란트 역시 영광과 몰락을 함께 겪은 화가다. <야경>(물론 잘못된 제목이라는 걸 이제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지만)을 통해서 천재적 솜씨를 보여준 렘브란트이지만, 결국은 경제적으로 파산했고, 인간적으로도 불운이 겹치기도 했다. 경제 상황에 쪼들리면서 수많은 모작, 즉 ‘가짜 그림’을 그릴 수 밖에 없었는데, 그것 자체가 당시의 관행이었다. 원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의 시선은 르네상스기의 메디치 가문으로 향한다. 우리는 메디치 가문을 르네상스 예술을 탄생시킨, 그리고 지켜낸 위대한 가문으로 치켜세우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메디치가가 오히려 예술로 가문을 지켜냈다고 본다. 당시에는 천대받고, 나아가 처벌까지 받을 수 있는 금융업으로 일어난 메디치 가문이었다. 그런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고자 로마 교황에게 무수한 돈을 쏟아부었고, 또한 에술 작품에 투자했다. 예술은 그들의 수단이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후에는 ‘길드’와 아카데미‘의 대립에 대해 쓰고 있다. ’길드‘는 폐쇄적인 조직과 ’아카데미‘는 진보적인 조직으로 새로운 예술가들을 대변한다고, 보통은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를 ’교회‘와 ’왕‘ 사이의 대립의 연장선으로 본다. 17세기 프랑스 왕실이 자신들이 후원하는 미술에 학문적인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서 아카데미라는 교육 기관을 만들었으며, 이는 치열한 밥그릇 싸움이었을 뿐만 아니라 위험천만한 권력 다툼이기도 했다. 물론 아카데미의 승리였다는 것은 역사가 기록하고 있다.
비즈니스의 관점에서 나폴레옹을 언급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는 미술 작품을 자신을 미화시키는 도구로 가장 적절하게 이용한 권력자 중 하나였다. 장군 시절부터 전속 미술가를 대통하며 자신의 활약을 그림으로 그렸고, 황제가 된 이후에는 너무나도 적절하게 자신을 미술 작품 속에서 홍보했다. 그 홍보는 사실에 근거했지만, 또한 진실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그 이후의 수많은 권력자들의 홍보에 큰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그런 효과적인 이미지 전략도 잘못된 정책으로 한꺼번에 무너져 버렸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끝으로 인상파 그림의 ’발견‘ 내지는 ’발명‘에 대해 쓴다. 무시당하던 인상파 그림을 수천 억의 가치를 지닌 그림으로 만든 이는 폴 뒤랑뤼엘이라는 미술상이었다. 그는 카브리엘 로그로 대표되는 화려한 귀족주의를 내세운 화랑에서 금테 액자에 넣은 인상파 화가의 그림을 걸어놓고, 자신이 창간한 잡지에서 노골적인 홍보 비평을 실어가며 그림을 팔았다. 그런 전략은 대중들, 특히 돈 많은 부르주아들에게 먹히기 시작했고, 귀족이 없는, 그러나 현대의 귀족이 되기를 원했던 미국의 신흥 부자들이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엄청난 돈을 주고 사기 시작했다. 그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보면 현재의 미술이라는 것은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이후 비즈니스가 미술을 좌우하면서 가져온 관계가 이어져 온 것이 아닌가 싶다. 이전의 교황이나 왕의 주문을 받고서 그림을 그리던 시대에 교회와 왕실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던 일을 하던 화가들이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이후에는 자신들의 모습과 사람들의 모습, 풍경을 그리면서 사람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찾도록 하는 관계로 바뀌었다. 하지만 여전히 권력자들의 프레젠테이션에 이용되고, 미술상의 농간에 휘둘리기도 하고, 비평가들의 펜에 좌지우지 당한다. 미술의 역사가 다른 역사와 다를 것이란 건 정말 순진한 생각이라는 걸 정말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