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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이주민이다”

요하네스 크라우제, 토마스 트라페, 『호모 에렉투스의 유전자 여행』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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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유전학(archaeogenetics)‘은 고대인의 뼈 등으로부터 DNA를 추출하고, 염기서열을 분석함으로써 인류의 과거를 추적한다. DNA를 분석하는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달하면서 비로소 등장한 분야로, 그동안 유물 등에 기초해서 해석하던 인류 역사에 대해 증거를 더하기도 하고, 혹은 다른 증거를 통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이 분야의 선도자이면서 가장 흥미로운 논문을 많이 발표한 이가 바로 스웨덴 출신이면서 독일에 있는 막스 플라크 연구소의 스테판 페보인데, 그는 호모 사피엔스뿐만 아니라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를 분석하여 우리의 유전자에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남아 있다는 ’충격적인‘ 연구를 내놓기도 했다. 또한 순전히 유전자만으로 시베리아의 한 동굴을에서 찾은 손가락뼈로부터 데니소바인의 존재를 확인함으로써 현생 인류의 친척을 하나 더 추가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유전자가 우리에게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후속 연구를 추동하기도 했다(우리나라에는 페보의 저서로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가 나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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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에렉투스의 유전자 여행』을 쓴 요하네스 크라우제는 바로 그 페보의 제자이면서 페보에게서 독립하여 또 다른 막스 플랑크의 연구소를 이끌고 있는 연구자이다. 그는 페보의 연구가 주로 조금씩 과거로 향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내 생각이다) 현생 인류의 이주에 관해 관심을 갖고 있다. 몇 천 년 전의 인류의 뼈로부터 유전자 정보를 확보하여 그것을 통해 인류가 어떻게 이동하고, 어떻게 섞여 왔는지를 추적하고 있는 것이다. 『호모 에렉투스의 유전자 여행』은 바로 그 연구 내용을 담은 책이다. - 그래서 사실은 ’호모 에렉투스의‘라는 우리말 제목은 아주 잘못된 제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고고유전학에 입문하면서 처음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페보와 함께 한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에 대한 연구였지만(이들도 사실은 호모 에렉투스가 아니기도 하다), 이 책에서는 그 내용은 매우 첫 부분에만 쓰고 있고, 대부분은 그 이후의 일들, 즉 현생 인류 조상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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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면 요하네스 크라우제의 연구가 주로는 유럽인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에 대해 집중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만으로 ’인류‘ 운운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절로 들지만, 그래도 이해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동아시아의 연구자가 이에 대한 연구를 한다면 당연히 아시아인의 형성에 관한 연구에서 시작하고, 집중할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물론 연구의 ’확장‘이라는 단계가 필요하지만).


그의 연구를 포함한 이 책의 내용을 보면 두 차례의 물결이 현재의 유럽인을 형성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약 8000년 전 아나톨리아 지역에 살던 농경민들이 유럽으로 밀려왔고, 그 후에는 4800년 전 스텝지대의 이주민들이 유럽 지역에 광범위하게 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광대한 이주의 물결은 기존 거주자를 완전히 몰살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서로 혼합되는 방식이었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므로 사르디니아섬과 같이 매우 독특한 지역을 빼고는 어떤 지역 출신의 유전자가 더 많고, 다른 지역 출신의 유전자는 적다는 식으로 얘기할 수는 있을 지언정, 어떤 이주자들만으로 순수하게 그 지역의 인구를 이루고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저자들은 분명하게 이야기한다. “유전자 분석으로 과거를 추적해보면 우리 모두는 이민자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러한 연구는 최근 유럽 지역과 트럼프 시대의 미국에서(사실은 우리나라도 포함된다) 일었던 난민 반대, 이주 거부에 대한 어떤 논리적 근거에 대해 반대한다. 어떤 지역도 인류가 순수한 형태로 존재하지 않으며, 이주민들이 그 지역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어떠한 증거도 찾을 수 없다. 적어도 유전자 분석으로 밝혀낸 인류의 역사는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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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실 나는 이 책에서 그런 인류의 유전자 분석에 대한 내용보다는 8장과 9장을 훨씬 흥미를 갖고 읽었다. 바로 인류를 괴롭혀온 감염병 병원체에 대한 연구를 다루고 있다. 페스트가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했다는 증거, 한센병을 일으키는 나균이 중세에도 존재했으며,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전파된 게 아니라 오히려 반대일 가능성 있다는 증거, 결핵이 소로부터 인류에게 전해졌다는 원래의 생각과는 다른 결론을 가능케 하는 증거, 그리고 매독의 전파에 대한 증거 등을 다룬다. 내 전공과 관련이 있어서도 그렇지만, 이 역시 당연히 인류의 이주와 아주 밀접하게 관련이 있으며, 이를 통해서 퍼즐을 맞춰가는 연구의 방식도 매우 흥미롭다. 저자는 이런 연구를 통해 고고유전학이 의학과 협력을 통해서 인간의 DNA가 병원체에 대해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밝힘으로써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통찰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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