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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감상적 고고학

닐 올리버, 『잠자는 죽음을 깨워 길을 물었다』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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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우리말)만 보았을 때는 ‘죽음’에 관한 사유를 쓴 책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 책은 역사에 관한 사유,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는 시기의 유물에 관한 생각을 담은 책이다.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모두 죽었으므로, 그리고 유물이 죽음 자체에 관한 것이 적지 않으니, 이 책이 죽음과 전혀 무관할 수는 없진 않다. 하지만 적어도 죽음 자체가 이 책의 주제는 아니다. 오히려 따지자면 죽음보다는 살아 있는 우리들에 대한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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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태생이고, 지금도 스코틀랜드의 지방 도시에 살고 있는 저자는 역사의 유물을 설명하지 않는다. 그 유물을 남긴 사람들을 상상한다. 어떻게 살았던 사람이었을까? 무슨 마음을 가지고 살아갔을까? 왜 이런 유물을 남겼을까? 객관적으로 유물을 바라보려 애쓰고, 기록하려 애쓰는 게 아니라 대신 아주 감상적인 마음으로 주관적인 느낌으로 유물들을 바라보고 대화를 나눈다. 물론 유물들에 관한 과학적 분석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그것만이 역사를, 고고학을 하는 자세는 아니란 걸 저자는 보여주고 있다.


수백 만 년 전 올두바이에서 발견된 발자국 화석, 조지아 드마니시에서 발견된 수십 만 년 전 호모 에렉투스의 화석에서부터 자신이 살고 있는 스코틀랜드 스털링에 있는 중세시대의 성에 대한 이야기까지, 그리고 인공적인 거석이나 건물만이 아니라 인간이 거쳐갔을 자연까지. 저자는 자신의 눈길이 닿았던 곳들을 회상하고, 인류의 삶을 재구성하고 있다. 그렇게 재구성된 인류의 삶은 그대로 현대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진다. 역사, 그것도 인류가 존재했던 역사에 비해서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현대라는 역사는 얼마나 짧은가? 그리고 또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지 않은가? 그러면서도 우리는 얼마나 뻐기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어쩌면 뻔한 얘기일지 모르지만 장엄한 역사의 흔적들을 앞에 두고 하는 얘기는 그만큼 차분하고, 설득력이 있다.


물론 저자의 발길은 무척 편향되어 있다. 유럽, 그것도 영국, 더 좁히면 스코틀랜드에 집중되어 있고, 좀 더 넓혀보면 호주, 남아메리카 정도로 넓혀진다. 아프리카나 중동이야 인류의 탄생, 인류 문명의 탄생과 관련되어 있으니 무시할 수 없을 터이니 한두 군데, 아시아는 인도 정도밖에 그의 발길과 눈길이 닿지 않는다. 아쉽지만, 잘 읽어보면 그는 책의 독자로 스코틀랜드, 좀 더 넓혀봤자 영국의 대중 정도만을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그는 게일어의 소멸을 안타까워 하는데, 만약 내가 쓴다면 제주말의 소멸을 안타까워 해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이다).


그는 기억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한다. 저자는 이렇게 쓰고 있다.

“우리가 알기로, 우주 전체를 통틀어 기억에 몰두하는 존재는 인간뿐이다. 이를 당연한 일로 여겨서는 안 된다.”

무엇을 남기거나, 혹은 남기지 않던 그것이 목적하는 것은 결국 후대에 무엇을 전할 것인가, 즉 기억에 남길 것인가에 관한 문제다. 무언가를 기억하고자 하는 욕망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결국 역사는 기억에 관한 것인데, 그것을 문자로 남겼을 때는 물론 그렇지 않았을 때는 인류는 그 기억을 붙잡기 위해 수많은 일을 해온 것이다. 그게 지금 우연히 발견되며 우리에게 그 기억의 목적을 되새기게 하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기억을 공유하는 것 그게 인간성의 가장 중요한 면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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