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 슈빈은 고고생물학자로 2004년 북극에서 물고기 화석 ‘틱타알릭(Tiktaaalik)’을 발굴하여 일약 세계적 스타(?)로 떠오른 과학자다. 틱타알릭은 목, 팔꿈치, 손목을 가진 물고기 화석으로 동물이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오는 중간 단계로 해석되었고, 진화 역사상 가장 중요한 발견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 그리고 그는 틱타알릭 발견의 과정을 동물의 진화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내 안의 물고기』에 담았다. 『내 안의 물고기』는 과학자가 자신의 발견을 얼마나 흥미롭게 서술할 수 있는지, 그것을 또 얼마나 더 넓은 과학과 연결시킬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책이었다.
그 닐 슈빈이 쓴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는 진화에 관한 또 하나의 흥미롭고, 매우 훌륭한 책이다. 그는 진화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를 교과서적인 고리타분한 언어가 아니라 자신의 연구에서 과학자들의 영웅적(!) 활약 등을 토대로 고생물학과 분자유전학을 접목시키며 매우 경쾌하게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닐 슈빈이 이야기하는 진화란 매우 역동적인 것이지만, 그렇다고 과거에 아예 없던 무언가를 새로이 만들어내서 갑자기 어떤 기능이 생겨나는 황당한 과정이 아니다. 이미 존재하던 것을 이용해서 새로운 기능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너무나도 흔한 그런 땜빵식 과정이다. 그것을 표절과 도용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지만, 자연에 존재하는 것을 표절하고 도용하는 것은 전혀 처벌받지 않을 일일뿐더러, 자연이, 진화가 보여주는 기상천외한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가 숨을 쉬는 데 이용하는 폐는 이미 물고기들이 물속에서 살기 위해서 사용하던 부레가 변형된 것이다. 틱타알릭과 같은 물고기들이 육지로 올라오기 전부터 이미 폐로 호흡하고 있었던 것이며, 그것이 있었기 때문에(그것만 필요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육지로 발(?)을 디딜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예들로 닐 슈빈은 새들의 날개에서도 찾고 있다. 새들의 비행에 쓰이는 것들, 즉 깃털, 속이 빈 뼈, 빠른 성장 속도, 높은 대사율, 날개 돋힌 팔, 경첩 같은 관절이 있는 손목 모두 공룡의 한 무리가 땅에서 뛰어다니며 먹이를 잡기 위해서 사용하던 것들이다. 비행이라는 놀라운 기능은 새로운 기관을 만들어내서 가능했던 것이 아니라, 오래된 형질을 새로운 용도로 전용함으로써 가능했던 것이다.
이 밖에도 닐 슈빈은 발생학과 유전학의 발달 과정을 되짚으며 그런 오래된 형질의 새로운 기능으로의 전용의 예를 아주 많이 끄집어낸다. 그 과정에는 인정받지 못한 과학자들의 이야기도 있으며, 혹은 그 발견으로 노벨상을 받은 환호의 역사도 있다. 그런 생물학의 역사는 크리스퍼까지 이어지는데, 고고학자인 닐 슈빈이 바로 이 법까지 이용하여 연구를 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진화는 의도가 없이 이뤄지는 것이다(나는 이 지점이 진화론이 창조과학과 가장 멀리 떨어진 지점이라 생각한다). 누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도 없이, 본인이 어떻게 되고 싶다고 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생물들을 보면 유연관계가 아주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비슷한 모양,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뱀처럼 생긴 몸, 즉 땅을 기어다니는 몸이 뱀뿐 아니라 도마뱀, 지렁이도마뱀류, 무족영원 등 다양한 동물에서 똑같이 나타나며, 도룡뇽이 혀를 총알처럼 발사해서 먹이를 잡아채는 능력(나는 이 부분을 가장 흥미롭게 읽었다)도 여러 계통에서 독립적으로 진화시켰다. 즉 ‘다발적 진화’(혹은 ‘수렴 진화’)는 자연에서 매우 흔한 현상이다. 진화의 결과란 ‘현실적으로 가능한 세계들 중 최선’이라는 말을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래서 자연의 발명은 우연이 아니며, 불확실한 도박도 아니다.
자연선택의 메커니즘으로 진화를 설명한 다윈 이래로 진화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설명이 많았지만 진화는 캐도캐도 끝이 없을 만한 경이로운 세계다. 이 책은 진화에 관한 아주 새로운 견해는 아니지만, 진화에 관한, 혹은 진화에 관한 연구를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결국은 진화에 관한 연구가 된 많은 연구를 종합해서 진화에 관한 커다랗고 종합적인 지식을 전해준다. 우리가 사는 세계가 이렇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