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거 알아? 일부러 전구 수명을 줄여놓았다는 거?

자크 페레티, 『세상을 바꾼 10개의 딜』

by ENA

‘딜(Deal)’이라고 했으니 적어도 상대방이 있거나 집단이 있다. 이를테면 전구의 수명을 제한하자는, ‘설계된 불만족’에 관한 딜에는 제너럴 일렉트릭, 필립스, 오스람 등의 전구 제조업체들이 참여하여 합의했다. 피터 힐과 일론 머스크, 맥스 레브친이 페이팔을 매각하는 것도 피에르 오미디아라는 상대방이 있어야 가능했다. 맥킨지의 톰 피터스와 로버트 워터먼이 만든 7S 모델은 지멘스나 펩시코와 같은 기업들이 채택했을 때 그 의미를 갖기 시작했다. 신체 지수인 BMI에 관해서도 이를 설정한 루이스 더블린 같은 이와 함께 이를 받아들인 의사와 약사, 나아가 일반인들이 있었고, 처방약의 특허가 만료될 위기에 처한 머크의 CEO 헨리 개즈든이 대응할 방안을 제안했을 때 이에 적극 호응한 제약업체가 있었다. 이처럼 자크 페레티는 오늘날의 세상, 적어도 비즈니스 세상을 만들어낸 중차대한 딜에 관해서 쓰고 있다.


IMG_KakaoTalk_20220804_195516277.jpg



그러나 이는 결국은 혁신적 아이디어에 관한 얘기다. 다시 ‘설계된 불만족’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누구든 완벽한 것을 개발해서 그것에 대해 평가를 받고자 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었지만, 지속적인 소비를 위해 전구의 수명을 제한하고, 휴대폰의 성능을 어느 정도까지만 억제시킴으로써 이미 업그레이드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하는 것 자체가 혁신적 아이디어였다. 비록 2008년 거의 파국에 이르기는 했지만 리스크를 자산화함으로써 엄청난 돈잔치를 벌인 월스트리트도 OPEC라는 산유국이 행한 석유 수출 금지 조치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그런 일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페이팔은 또 어떤가? 눈에 보이는 화폐 역시 역사적인 아이디어였지만, 그것이 없이도 거래를 할 수 있으며, 아니 그것이 없으면 거래를 할 수 없게 만든 것을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아니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버라는 서비스도 그렇다.


이런 것들은 이미 많은 이들이 혁신적 아이디어라고 일컫는 것들이다. 그런데 자크 페레티는 또 다른 아이디어, 내지는 딜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미국을 포함한 68개국과 체결한 일대일로협정 같은 것이다. 수천 년을 앞서나가다 약 200년 간 주도권을 내주었던 아시아, 특히 중국이 다시 세계의 규칙을 쓰겠다는 아이디어가 바로 ‘일대일로(一帶一路)’인 셈이다. 그리고 조세회피라는 부자들과 기업들을 위한 합법적(?) 부정 도구를 만들어낸 케이맨제도 역시 한 장을 두고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 케이맨제도에 대한 얘기에서 단순히 조세회피라는 게 그른 것이냐, 아니면 그래도 용납해야 하는 것이냐 하는 논쟁을 하지 않는다. 왜 그런 상황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또 어떤 아이디어가 그런 제도를 만들어낼 수 있었는지를 이야기한다. 사실 이 이야기는 바로 그다음 장의 ‘빈부 격차’와도 연결이 된다. 여기서도 빈부 격차가 커지고 있다는 것을 기본적인 사실로 하면서도 그에 대해서 비분강개하지 않는다(물론 엥겔스의 저작가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인용하지만). 대신 그런 빈부 격차와 같은 불평등을 이용해 돈을 벌 방법을 찾아낸 이들의 아이디어를 더 많이 이야기한다. 이렇게 얘기하면 이 책은 도덕적 판단은 완전히 무시하고, 돈이 되기만 하면 뭐든 찬양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을 펼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나는 그렇게 무엇이든 돈으로 만들어내는 ‘혁신적 아이디어’가 어떤 역사와 어떤 논리 구조를 가진 것인지를 명확히 파악해야만 이에 대한 대응을 할 수 있다는 얘기에 더 가깝다고 본다.


무엇보다 이 책을 통해서 오늘날의 세상을 만들어 낸 이러한 이면의 이야기들이 얼마나 우리의 삶을 바꾸어 놓았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이는 흥미롭기도 하지만, 때로 감동적이기도 하고, 또 현대를 바라보는 새롭고 유용한 시각을 제공하기도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이토록 경이로운 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