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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단이 있는 곳에 잡음이 있다

대니얼 카너먼・올리비에 시보니・캐스 선스타인, 『노이즈』

by ENA

판사들의 양형 가이드라인이라는 게 있다. 어떤 범죄에 대해 처벌의 범위를 정해놓은 것이다. 동일한 범죄에 대해서 판사들마다 너무 차이가 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이다. 그러나 여전히 판사들마다 들쭉날쭉한 판결에 대해서는 지금도 가끔 뉴스에서 다룰 정도이다. 이에 대해서 맨 처음 문제를 제기한 게 1970년대 프랑스의 판사 마빈 프랑켈이었다. 그는 비록 자신의 주장에 대한 통계적 분석을 내놓진 않았지만 이후 그의 지적으로 인해 양형 가이드라인이라는 게 생겼다.


대니얼 카너먼, 올리비에 시보니, 캐스 선스타인이 함께 쓴 『노이즈』는 바로 그러한 동일한 상황에 대한 차이가 나는 판단을 노이즈(noise), 즉 잡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이 잡음이 얼마나 만연한지, 얼마나 문제가 있는지, 이를 줄이기 위한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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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카너먼은 트버스키와 함께 행동경제학의 시조라 불리우는 심리학자다. 심리학자로서 노벨경제학상을 최초로, 그리고 유일하게 수상한 인물이기도 하다(트버스키는 이미 죽어서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했다. 노벨상 이후 트버스키와 카너먼이라고 불리던 순서가 카너먼과 트버스키가 되었다). 그가 쓴 『생각에 관한 생각』은 행동경제학에 관한 책이 많이 있음에도 시조가 쓴 책이라는 후광을 입고 행동경제학의 가장 신뢰받는 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캐스 선스타인 역시 유명하다. 그는 경제 정책 전문가이자 법학자인데, 행동경제학의 두 번째 노벨상 수상자가 된 리처드 탈러와 함께 쓴 『넛지』는 그 제목 자체가 하나의 보통명사가 될 만큼 유명하고 보편적인 방식과 용어가 되었다. 말하자면 그는 행동경제학의 성과를 실제 정책으로 활용하는 데 힘을 쏟는 인물인 셈이다.


올리비에 시보니는 처음 접한다. 경영전략 컨설턴트라는데, 책을 보면 카너먼과 공동 연구 및 작업을 많이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이 『노이즈』라는 책에서 잡음이라는 현상에 대한 분석은 카너먼과 선스타인의 몫이 클 수 있겠지만, 그것을 줄이기 위한 현장의 방안에 대해서만큼은 시보니의 몫이 컸을 것으로 짐작한다.


노이즈, 즉 잡음은 편향과는 다르다. 편향과 잡음이 함께 작용하여 오류를 만들어내는데, 그동안의 행동경제학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주목한 것이 편향이었다면, 잡음에 대한 주목도는 터무니없이 낮았고, 잡음에 대한 관심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오류를 낳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한다는 인식에서 이 책은 출발한다. 편향은 어느 한쪽으로 판단이 쏠리는 것을 말하는 데 반해, 노이즈는 판단이 분산되는 것을 말한다. 사격장에서 여럿이 한 과녁을 향해 총을 쏘는 데 총탄 자국이 좌측 하단으로만 쏠렸다면 그것은 편향이 큰 것이지만 잡음은 적은 것이다. 반면 중앙을 중심으로 이리저리 총탄 자국이 남았다면 그것은 잡음이 큰 것이다. 잡음이 큰 그 결과를 평균을 내면 중앙에 가깝게 나올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만 판단한다면 그것은 전체 상황에 내재된 오류들을 무시하는 결과가 나오는 셈이다. 다시 법원에서의 판결을 예를 들면, 다섯 명의 판사가 동일한 범죄자를 두고, 1년, 3년, 5년, 7년, 9년 이렇게 판결했을 때 평균은 5년이 나오지만 (가장 적절한 판결을 5년이라고 했을 때) 이 판결들을 두고 적절하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잡음이고, 잡음의 문제점이다.


저자들은 보험사정인, 기업에서의 근무 평정, 병원에서의 진단, 지문 감식 등의 예들을 통해서 잡음이 어떤 형식으로 나타나는지를 분석하고, 그것들의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있다. 제도 잡음, 즉 시스템에 내재된 잡음이 가장 중요하며, 이 제도 잡음은 수준 잡음과 패턴 잡음으로 분해된다. 수준 잡음이란 서로 다른 개인이 내린 평균적인 판단이 서로 차이를 보이는 것을 말하고, 패턴 잡음이란 같은 사례에 대해서 개인적이고 고유한 반응의 차이를 말한다. 그리고 또한 상황 잡음이라는 것도 존재한다. 그것은 판단을 내리는 사람이 일시적인 이유로 서로 차이가 나는 판단을 하는 경우를 말한다. 판사가 아침에 아내와 다투고 나왔는지 여부, 날씨가 맑은지 흐린지 여부, 점심 식사 전인지, 후인지 여부에 따라서 판결이 달라지는 것을 말한다(이 일견 어처구니 없는 상황 잡음에 대해서는 행동경제학에서 많이 분석해왔다). 문제점은 이 잡음의 중요성을 크게 인식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신의 판단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기도 하며, 잡음이 잘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이 가지는 문제점은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욱 클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저자들의 ‘판단’이다.


문제 제기에 그치지 않고 저자들은 다소 부족하나마 해결책을 제시한다. 우선 그 첫 번째 발걸음은 어느 분야에서나 마찬가지로 잡음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개방된 사고를 하는 이들이 잡음이 적은 판단을 한다는 것을 지적하면 또한 통계적 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리고 결정 위생이라는 것을 전략으로 내세운다. 결정 위생이란 감염을 줄이기 위한 손씻기와 같이 잡음 축소를 위해서 일상적으로 행해야 하는, 실제로는 그 효과가 금방 나타나지 않는, 하지만 그것을 무시했을 때는 문제가 생기는 그러한 것을 말한다. 판단을 여러 개의 독립적인 과제로 분해하고, 순차적으로 증거를 제시하는 것, 직관적 판단을 될 수 있으면 늦추는 것, 상대적 척도에 따른 상대적 판단을 선호하는 것 등등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저자들의 분석, 견해, 제시에 대해 가장 큰 걸림돌이 하나 있다. 그런 잡음의 존재와 그 문제점에 대해서는 잘 알겠는데, 이것이 획일성으로 빠질 우려가 없지 않느냐는 반론이다. 획일성은 창조성의 적이다. 그리고 그런 일률적인 판단은 장기적으로 의욕의 상실로 이어진다. 물론 저자들은 그런 일관된 판단의 규칙을 정하는 것이 절대 창의성의 상실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그런 강조의 구체적인 근거는 조금은 미약해 보인다. 그래서 부정은 할 수 없지만, 모든 것에 동의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보류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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