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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한 오스트리아인 여행가의 눈에 비친 조선

에른스트 폰 헤세-바르텍, <조선, 1894년, 여름>

by 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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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조선에선 많은 일이 있었다. 1월에는 동학농민전쟁이,, 6월에는 갑오개혁, 그리고 8월에는 청과 일본이 이 땅에서 전쟁을 벌였다. 모두 역사 속에서 볼드체로 기록되는 일들이다. 그 흉흉했던 해 여름 오스트리아인 헤세-바르텍이 일본을 거쳐 조선을 여행했다. 그는 1872년 남유럽을 시작으로, 1875년 서인도 제도와 중앙 아메리카, 1876년부터 1878년 사이에는 미국 일대를, 그 이후에도 북아프리카, 아시아 등을 여행한 부지런하고 호기심 많았던 여행가였다. 그가 외국에 문을 연 지 겨우 10년이 조금 넘은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가장 덜 알려진 조선이라는 나라를 여행한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는 조선의 사정을 상당히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다. 전쟁의 기운이 이미 만연한 땅을 밟는 데 거의 망설임이 없었다. 새로운 땅과 문화에 대한 기대감이 훨씬 컸다. 6월 말 일본의 나가사키를 출발하여 부산에 도착한다. 첫 감상은 실망이었다. 깔끔한 일본 시가지와 항구에 비해 부산은 너무나 초라했고, 지저분했다. 과연 당시 조선의 두 번째로 큰 항구라고는 도무지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산들은 모두 헐벗었고, 제대로 된 도로도, 기차도 없는 나라였다. 제물포도, 서울도 길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지저분했고, 사람들은 게으르고, 집들은 형편없었다. 그의 눈에 조선은 중국의 속국이었고, 이제는 당연히 일본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 국가였다. 기력 없이 쇠잔하고, 영락한 국가가 바로 조선이었다. 그는 그렇게 만든 것은 바로 수백 년 동안 잘못 통치한 지배 계급이라고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그의 통찰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지적하는 조선의 모습은 너무나도 가슴 아프고, 때론 자존심이 상하기까지 한다. 조금 오해하는 부분이 없지는 않으나, 그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던 것이고, 그게 어쩌면 객관적인 모습일지도 모른다. 또 굳이 우리가 부정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형편 없었기에 제대로 된 전쟁 한번 치르지 못하고, 도장을 찍고 나라를 통째로 넘겨 주었던 것이다. 우리가 바라본, 우리의 모습과는 또 다른 처절함을 한 외국인의 눈으로 느끼게 된다.


책을 읽으며 거듭 놀라게 되는 것은, 그가 당시 우리의 풍습과 제도를 너무나도 깊게 서술했다는 점이다. 다소 피상적이고, 또 잘못 서술한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현재의 우리 대부분이 알고 있는 조선의 모습보다 이 벽안의 외국인이 기록한 우리의 모습이 훨씬 자세하고 깊이가 있다. 지나가면서 관찰할 수 있는 자연과 살아가는 모습뿐만 아니라 왕실과 조정의 사정에 대해서도, 장례식에 대해서도(그 알 수 없는 번잡함과 허례허식!), 중국 황제의 사신을 맞는 모습(제발 오지 말아달라고 애원하는 조선의 국왕의 모습까지), 규율이 없는 군대, 조선인들의 오락 생활, 여성들의 고달픈 삶, 교육제도, 종교관, 재판, 산업 등등 19세기 말 조선의 모습에 관해 총체적으로 이토록 상세하게 적어 놓은 책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그의 호기심과 예리한 관찰력, 인맥 등이 작용한 것이리라.


그는 조선의 모습과 제도, 지배 계층에 대해 굉장히 부정적으로 서술하고 있지만, 군데군데 조선의 희망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조선인이 중국인이나 일본인에 비해 신체적으로 능가하며, 건강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며, 내면이 훌륭하여 정부만 괜찮다면 “아주 짧은 시간에 깜짝 놀랄 만한 것을 이루어낼 것이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리고 나아가 이백 년 안에 새로운 모습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의 입발린 소리였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그의 기대와 예측 대로 새로운 모습의 국가를 이루어냈다. 지금 한국을 방문하는 이는 100여 년 전 한 외국인이 놀랍고, 애잔하고, 측은한 느낌으로 바라보았던 조선이라는 나라는 찾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외국인에 비친 조선이 그런 모습이었다는 것은 잊지 말아야 한다. 다시 그렇게 전락하지 않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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