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주(主) 제목만을 가지고는 내용을 오해할 수도 있는 이 책의 원제는 “Patient Zero”다. 우리말로 “0번 환자”로 번역할 수 있는 ‘patient zero’는 어떤 질병, 특히 감염병에 제일 먼저 걸린 환자를 의미한다. 이를테면 현재 수년 째 팬데믹을 이어오고 있는 COVID-19의 경우에는 중국 우한의 어떤 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책의 우리말 제목을 원제와 관련지어 보면, 과학자들이 특정 질병의 첫 번째 환자를 찾는 과정을 다룬 내용으로 짐작해 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이 전염병의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는 열쇠가 된다는 걸 의미한다는 것도 미루어 알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patient zero’를 찾는 과학자들의 활약이 아니라, ‘patient zero’ 이후에 이에 대응하는 과학자와 의사 들의 활약이 더 주된 내용이다. 1665년 런던의 굿우면 필립스라는 여인과 1854던 런던 소호의 세라 루이스의 아이들은 각각 페스트와 콜레라의 patient zero로 다루고 있다. 1900년 쿠바의 황열병에 대해서는 환자가 아니라 황열병의 원인을 규명하고자 나섰다 희생당한 미국의 의사들, 제임스 캐럴과 월터 리드에 대해서 다루고 있고, 1906년 뉴욕의 장티푸스에 대해서는 질병의 보균자의 예로서 지금도 중요하게 언급되는 ‘장티푸스 메리(Typhoid Mary)’, 메리 멜런이 주인공이니, 사실은 이들이 patient zero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이들이 황열병이나 장티푸스를 연구하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인물임에는 틀림이 없다. 1918년 전 세계를 강타한 스페인 독감과 관련해서는 미국 켄터기 주 캠프 펀스턴의 훈련병, 1976년 자이르(지금의 콩고민주공화국)의 에볼라의 첫 희생자로 기록된 마발로 로켈라, 그리고 1980년 미국 LA 지역의 동성애자들(여기서는 patient zero라는 말을 유행시킨 듀가스는 박스에서 언급하고 있다)은 그 질병의 희생자로 처음 기록되었다는 의미에서 실질적인 patient zero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이 진짜 patient zero는 아니라는 데 아이러니, 내지는 함정이 있다. 이들이 진짜 해당 질병의 첫 환자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냥 알려진, 혹은 기록된 첫 환자일 뿐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진짜가 될 수는 없지만, 그래도 ‘patient zero’인 이들을 확인하고, 그들을 추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그들에게 책임을 묻고, 비난하기 위해서는 아닐 것이다(COVID-19의 우한 환자도 마찬가지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질병이 이러한 책에 다룰 만큼 널리 퍼지고 희생자가 많이 나오게 된 이유를 찾는 데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콜레라의 경우 브로드 거리의 수도 펌프 근처에 살았던 세라 루이스가 배설물을 그냥 밖으로 내다 버린 것이 우물을 오염시키고, 콜레라를 퍼뜨린 원인이 되지만(세라 루이스의 아기가 첫 환자일 수는 없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존 스노와 같은 의사과학자가 그것을 밝혀냄으로써 그런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었던 무지를 지적하고 그것을 금할 수 있는 근거, 청결한 상하수도 시설을 갖출 계기가 마련되었다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탄탄한 근거를 갖추었고, 핵심적인 부분에 집중하고 있는 책이면서도, 이야기식이라 쉽고, 금방 읽을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우리말 제목만 조금 내용과 맞추었으면 어땠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