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웬만하면 음식 종류나 맛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입맛이 까탈스럽지 않은 게 분명하고, 맛에 대해 인정할 수 있는 범위도 넓다. 무엇을 먹을까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대개 그저 끼니를 떼울 정도면 괜찮다고 여긴다. 물론 가끔은 좋아하는 것을 찾긴 하지만, 그 경우도 그닥 특별한 것이 아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여긴다.
그런데 생태학자이자 진화학자인 롭 던과 인류학자인 모니카 산체스가 쓴 이 책은(둘은 부부다) ‘맛있는 먹으려는 욕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 욕망이 인류의 진화를 견인했다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의 내용과는 영 어울리지 않는 인간이 바로 나인 거 아닌가? 하지만 역으로 가장 적합한 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무엇을 먹을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나 같은 사람이야말로 음식에 관한 인류의 디폴트 값을 체현하고 있는 게 아닌가?
사실은 내가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이건, 그렇지 않건 상관없이 이 책은 읽으면서 입맛을 다시게 하기에 충분한, ‘맛있는’ 책이다. 진화학자와 인류학자의 콜라보를 즐길 수 있고, 가끔은 조금은 다른 견해도 엿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맛에 길들여진 동물이다. 이건 인류의 진화 경로 어디쯤엔가 나타났고, 인류가 진화한 이후 증폭된 특징이다. 많은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것, 그 맛을 인공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것만 보더라도 인류가 맛에 얼마나 많이 의존해 왔는지를 알 수 있고, 또 그게 인류의 진화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짐작을 던과 산체스는 고고학적 증거, 비교동물학, 화학, 생리학 등을 통해 상당히 신뢰도 높은 증거를 찾아내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들은 우리가 얼마나 침팬지나 고릴라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동물인지를 보여주는 내용들이다. 침팬지도 도구를 사용한다는 것은 이제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침팬지나 고릴라도 은근 맛있는 것을 즐긴다. 우리의 미각은 그들과 그닥 다르지 않다. 즉, 진화적으로 물려받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다르다. 우리는 요리를 할 줄 안다. 요리란 외부의 물리적, 화학적 도구를 이용하여 음식을 변형시키는 것을 말하는데(이런 정의 자체를 여기서 처음 접했다), 이 요리라는 행위야말로 계획과 실행의 결합이 필요한데, 여기에는 고도의 지적 능력이 필요하며 도구를 정교하게 이용해야 한다. 그렇다면 요라야말로 인간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우리는 맛을 위해 태어났다.
이 요리로 인해 많은 동물들이 멸종했다는 것도 흥미로운 내용이다. 여기서 흥미란 지적인 이유에서 그렇다는 것이고, 사실은 전혀 즐거운 것은 아니다. 특히 다음과 같은 내용은 씁쓸하게 읽힌다.
“인간은 맛있는 종들을 계속 사냥해서 귀해지게 만든다. 그렇게 희귀해지면 오히려 더 많이 사냥한다. 희소성 때문에 그 종들의 가치가 높아지고 맛이 더 특별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127쪽)
이 책을 읽었다고 매일 먹는 음식이 달리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한 끼를 해결하는 의미를 거창하게 여기지도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먹는 음식이 바로 나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내가, 우리가 진화해 왔다는 것을 가끔은 기억하고, 어딘가에서 이야기하고, 또 되새길 것 같다. 더불어 저자들이 한 주제를 통해 인류의 본성을 이해하려는 자세와 방법만큼은 오래도록 생각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들의 책이 떠오를 때면 ‘맛있는(delicious)’ 느낌이 들고, 입안에 침이 고일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