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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노벨상에서 읽는 인간의 심리

김경일, 이윤형, 김태훈, 『이그노벨상 읽어드립니다』

by ENA

‘이그노벨상(Ig Nobel Prize)’이란, 미국의 하버드대학교에서 발간하는 한 저널이 만든, 기발한 연구에 시상하는 상을 말한다. 1991년에 처음 시상하기 시작한 이 상은 '다시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기발한 연구나 업적을 대상으로 매년 10월경 노벨상 발표에 앞서 수여된다. 원래 노벨상에서 ‘Nobel’이라는 단어의 발음이 ‘noble’ 즉 ‘고상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면 이그노벨상의 발음은 ‘ignoble’로 노벨상을 좀 비트는 느낌이 있다. 그렇다고 이 상에는 상금도 없지만, 수상하는 사람들은 거의 기꺼이 시상식에 자기 돈을 들여 참석하고 즐거워한다고 한다. 사실 이그노벨상을 수상한 연구들을 보면 도대체 왜 이런 연구를 했을까 싶은 것들도 적지 않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정말 기발하고, 또 필요한 연구인 경우도 상당히 많다. 실제로 노벨상과 이그노벨상을 함께 수상한 이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인지 점차 이그노벨상이 발표될 즈음, 우리나라에서도 이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학생이 받기도 했고, 또 어떤 연구가 이번에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까 궁금해지는 것이다. 이그노벨상의 시상 부문은 10개 부문이라고 되어 있기는 하지만 노벨상처럼 딱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여러 학문 분야와 관계가 있는 연구’라는 부문이 있어서 상당히 많은 부문을 포괄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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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일, 이윤형, 김태훈. 이 세 심리학자들이 이그노벨상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이그노벨상을 수상한 많은 연구가 사람의 심리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그노벨상을 읽어드립니다’라고 했지만, 실제 책에서 읽어주고 있는 이그노벨상은 여러 분야에 걸친 연구가 아니라 모두 인간의 심리나 행동에 연관된 것들이기도 하다.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고통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욕’ (2010년 평화상) - 욕을 하면 고통이 줄어든다는 연구.


‘잘못 바로잡기: 괴롭히는 상사의 인형에게 보복하면 정의를 회복할 수 있다’ (2018년 경제학상) - 마치 조선 시대의 궁중 비화 같은 얘기지만 못마땅한 직장 상사 대신 저주인형에 대고 보복하면 스트레스가 풀려 업무 효율이 증가한다는 연구. ‘경제학상’인 이유가 바로 업무 효율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충동의 급격한 증가가 건강한 성인의 인지 능력에 미치는 영향’과 ‘억제의 영향: 소변이 급해지면 어떤 영역에서 충동을 억제하기가 쉬워진다’ (2011년 의학상) - 모두 소변에 관한 연구로 소변을 참으면 인지 능력이 높아진다든가, 혹은 지나치면 반대라는 것을 주장


‘어린 피노키오에서 어른 피노키오까지: 거짓말의 횡단면적 수명 연구’ (2016년 심리학상) - 거짓말에 대한 연구. 거짓말을 많이 하는 시기가 있다. 그리고 거짓말을 잘 하려면 머리가 좋아야 한다.


‘위약과 치료 효과의 상업적 특징’ (2008년 의학상) - 비싼 약이 싼 약보다 효과가 좋다. 왜 명품에 혹하는지를 밝힌 연구?


‘인생은 설명서를 읽기에는 너무 짧다: 제품의 문서화와 과도한 기능에 소비자들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2018년 문학상) - 우리는 왜 제품 설명서를 읽지 않는가? ‘문학상’이라는 게 더 신기.


‘낭만적인 사랑과 심각한 수준의 강박장애는 구분하기 어렵다’ (200년 화학상) - 왜 화학상이냐면 사랑에 빠진 사람과 강박장애를 가진 사람에서 동일한 화학물질이 거의 비슷하게 나온다는 것을 밝힌 연구이기 때문이다.


‘늦게 자는 저녁형 인간일수록 어두운 3가지 특징이 더 많이 나타난다’ (2014년 심리학상) - 여기서 어두운 3가지 특징이란, 나르시시즘, 사이코패스, 마키아벨리즘이다. 저녁형 인간일수록 이런 특징을 갖는다는데, 저자들은 이것이 꼭 그렇지는 않다는 것을 얘기하려고 진땀을 흘리는 것 같다.


‘눈썹은 나르시시즘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2020년 심리학상) - 한동안 왜 숯검댕이 눈썹에 열광했는지를 알 수 있는 연구.


‘옆 사람이 하품할 때 따라 하지 않는 사람은 사이코패스일 확률이 높다’ (아직 이그노벨상을 받지 못했으나 앞으로 수상이 유력) - 사이코패스는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는 얘기인데, 그 지표가 하품.


이 목록을 보면 어때 보이냐면, 그렇게 ‘황당’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저자들도 이 연구들에서 확장하면서 인간의 심리에 대해 보편성을 끌어내고 있는데, 이 연구들이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고, 다른 연구도 있다. 즉, 인간에 대해서 잘 이해하기 위한 화두 같은 연구로 보고 있다.


이 연구들을 보면 연구 주제나 소재를 찾는 것이 기발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든 연구의 주제, 소재가 될 수 있으며, 그것을 통해서도 인간의 본질을 알아나가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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