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맞선 이단아 57인

박홍규, 《우리는 꽃이 아니라 불꽃이었다》

by ENA

세상을 불꽃처럼 살다 간 이들의 기록이다. ‘박홍규의 이단아 읽기’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던 57 꼭지의 글을 엮었다. 57명의 이단아! 이들은 모두 주류의 질서를 과감히 부정하고, 대세에서 벗어나 자신의 주장을 과감하게 펼쳤으며, 자신의 주장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간 사람들이다.


이들 이단아들은 박홍규 자신이 다른 다양한 이름으로도 부른다. 주류가 아니었으니 아웃사이더이고 소수자였다. 세상의 질서에 대들었으니 반항인이고 저항인이었다. 누구나 하는 주장을 한 이들이 아니었느니 예외자였으며, 누구보다 먼저 예민하게 세상의 흐름을 읽어내고 행동했으니 전위(아방가르드), 선구자, 선각자였다. 앞으로 다가올 세상에 대해 긍정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했으니 예지자이며 예언자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자신의 사고로 이뤄냈으니 무엇보다 지성인이고 사상가였다.


박홍규가 57명의 이단아를 고른 기준은 없다 했지만, 거의 공유하는 생각의 공통점이 있다. 이른바 아나키즘이라 불리는 사상이다. 몇몇 예외는 있지만, 대체로 여기에 실린 이들은 권력을 부정했으며, 자유로운 개인, 자율적인 자치를 이상으로 생각했던 이들이다. 그것을 어떤 수단으로 이룰 것이며, 어떤 방식으로 실천할 것인지는 서로 달랐지만 말이다. 어떤 이들은 개인적인 실천으로 묵묵히 수행했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권력의 종식을 위해 사회 활동을 하기도 했으며, 폭력 투쟁에 나선 이들도 있다.


그래서인지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개인적으로 부끄러운 얘기인지 모르겠지만, 여기에 소개된 이들의 이름 자체를 처음 듣게 게 태반이 넘는다. 태반? 아니 거의 대부분이다. 제2부의 <문학과 예술의 이단아들>에서는 그나마 소설가 등을 다루고 있어 좀 알지, 제1부의 <사상과 행동의 이단아들>에서는 과학자 마리 퀴리(그것도 나는 과학자로서 마리 퀴리를 알았지, 그가 과학을 급진적인 사회 참여 방식으로 택했다는 것은 잘 몰랐다)나 역사가 하워드 진 정도, 에드워드 사이드, 쿠르드 독립운동의 압둘라 오잘란 정도를 제외하면 낯선 이들들이다. 사실 제2부라고 그다지 나을 것도 없다. 이름만 들었을 뿐인 예술가들이 적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서 왜 이렇게 이름이 낯선 이들이 많을까 생각해봤다. 박홍규가 자주 지적하고 있듯이 주류의 시각은 이들을 외면해왔으며,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이들의 책 중 번역되지 않은 것은 물론, 소개조차 해오지 않았다. 어느 시기까지는 그들의 시각이 위험해서였고, 어느 시기 이후에는 우리나라의 학자 사회 자체가 지나치게 주류에서 벗어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성향을 띠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호세 무히카 같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우루과이)’에 대해서 전혀 몰랐다는 것은, 나의 지적, 사회적 무관심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런 이가 우리에게 적극적으로 알려지는 것이 불편한 이들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나 싶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이처럼 여기의 인물들에 대해서 모르면서도 그들의 말 중에는 잘 알려진 것들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이 책이 제목이 되기도 한) “나는 꽃이 아니라 불꽃이었다” (소피아 코발렙스카야), “조금씩 더 가난해집시다” (도로시 데이), “세계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 (자크 엘륄) 같은 것들이다. 아무리 그들을 무시하더라도 그들의 생각 중에 우리에게 스며들어오는 것이 있으며, 그 가치에 대해서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는 얘기이리라.


부끄러움과 놀라움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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