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고, 위험하고, 따뜻한 비행기와 파일럿 이야기

김동현, 《세계사를 뒤흔든 19가지 비행 이야기》

by ENA

비행 이야기라고 해서 처음에만 좀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이고, 뒤로 갈수록 딱딱하고 전문적인 이야기가 될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다. 역사의 고비에서 비행기와 비행기 조종사의 이야기가 어우러지는 훌륭한 인문학 책이다. 그저 위대한 비행사, 혹은 끔찍한 사고에 대해 기술적으로 쓴 게 아니라 생각할 거리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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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무엇을 쓴 게 아니라, 쓰지 않은 게 있다는 것이다. 바로 비행기 역사의 시초라 할 수 있는 라이트 형제에 관한 이야기다. 책장을 펴기 전에는 당연히 첫 번째 장, 혹은 두 번째 장에 그 이야기를 할 거라 생각했는데, 웬걸 라이트 형제는 단 한 줄 등장한다. 비행의 역사를 쓰면서 어떻게 인류가 그걸 안 쓸 수 있을까? 좀 생각해봤다.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들의 역사는 비행의 측면에서 가치가 있는 것이지, 역사적 측면에서는 할 이야기가 많지 않아서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만큼 김동현은 이 책에서 ‘역사’ 속의 비행에 대해 집중하고 있다.


그는 전쟁에 이용된 비행기, 비행 조종사에 대해 무척이나 비판적이다. 물론 전쟁은 비행기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개선시켰고, 비행술을 발전시켰다. 어쩌면 전쟁이 없었으면 지금과 같은 고성능 비행기의 출현은 많이 늦춰졌을 것이다. 하지만 출현과 함께(라이트 형제가 먼저 전쟁용으로 비행기를 쓸 것을 생각했다), 전쟁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은 비행기는 그것으로 많은 인명을 살상했고, 또 많은 비행사들이 하늘에서 산화해갔다. 또한 1970년대 이후 민간 항공기에 대한 폭격에 대해서도 굉장히 비판적으로 다룬다. 그 비판은 어느 한 진영에만 향하지 않는다. 소련도, 미국도, 이스라엘도, 이란도 민간 항공기를 실수로, 심지어 의도적으로 격추하고는 그 책임을 지지 않는다.


전쟁과 관련한 비행에서 절대 빠뜨릴 수 없는 것이 바로 일본의 가미카제 특공대다. 우리는 그들의 정신병적인 돌격에 혀를 내두르며, 그들의 정신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김동현의 시각은 다르다. 실제로는 그들은 거의 끌려가다시피 가미카제 특공대원이 되었고, 출격 전날에는 흐느끼며 울고, 미친 듯 춤을 추다 의자를 집어 던지고, 하염없이 땅바닥만 바라보았다. 도살장에 끌려가듯 비행기에 올라탄 그들은 제대로 된 비행 훈련도 받지 않았기에 미국 해군에 큰 타격을 입히지도 못했다. 심지어 조금이라도 미국 해군 선박에 접촉이라도 한 비율은 12%라고 한다. 제대로 타격을 준 경우는 드물었다. 그들이 자폭하는 순간 마지막 외친 말은 “천황폐하 만세”가 아니라 “오카상(어머니)”였다고 하니, 애처럽고, 또 일본제국주의의 망상과 무모함, 비인간적인 모습에 몸서리쳐진다.


그러나 그렇게 어둡고 파괴적인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망신창이가 되어 퇴각하는 미군 폭격기를 호위하여 무사히 돌려보낸 나치의 공군 슈티글러의 이야기라든가, 노르웨이의 산악 지대에 함께 고립된 영국과 독일의 파일럿들 사이의 우정은 김동현의 말대로 “한 사람의 인격과 가치”가 어떻게 평가되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게 한다.


이 19가지의 비행이 ‘세계사를 뒤흔’들었다는 것은 물론 과장이다. 하지만 현대 세계사의 고비에 비행의 역사가 있었던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 이야기들은 놀라운 이야기이기도 하고, 슬픈 이야기이기도 하고, 처참하고도 분노에 찬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또 따뜻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희망을 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모처럼 낯설면서도, 풍부한 내용을 담고, 또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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