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라스무스, 광기를 이기는 정신에 대해

슈테판 츠바이크, 《에라스무스 평전》

by ENA

슈테판 츠바이크는 나치의 나라에서 살 수 없었다. 유대인이었던 그의 책은 금서로 지정되었고, 불살라졌다. 결국 영국으로 피신했고, 결국 2차 세대대전 중 브라질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슈테판 츠바이크가 에라스무스의 평전을 쓴 것은 1934년 영국으로 망명하기 직전이었다. 그는 에라스무스에 자신의 시대와 자신의 조국, 그리고 츠바이크 자신을 투영했다. 광기와 극단에 반대했던 힘없는 이상주의자 에라스무스를 통해 시대를 고발하고자 했고, 자신의 신념을 밝히고자 했다. 츠바이크가 쓴 많은 평전이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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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무스는 어떤 이였는가? 그는 인문주의자이자 최초의 유럽인, 혹은 세계주의자였다. 글쓰기만으로 자신을 드러낼 수 있었던 책의 인간이었다. 그는 이성의 힘을 믿었으며, 광신을 증오했다. 그는 하나의 주제를 깊이 파고들기보다 넓은 분야를 아우르는 ‘폭’의 학자였다.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았던 중립의 인간이었고, 겁이 많아 위험을 피해 달아나는 인간이었다. <우신예찬>과 같은 책들을 통해 종교개혁의 이념의 단초를 드러냈지만, 깃발을 든 루터에 동조하지 못했고, 그렇다고 교황의 편에도 서지 않았다.


츠바이크는 에라스무스를 비롯한 당대의 인문주의자에게서 “오늘날까지 여전히 실현되지 못한, 공동 문화와 문명 속에 통일된 유럽 국가”가 시작되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당대 인문주의자에 대해 긍정의 시각만을 얘기하지 않는다. 그들은 세상을 너무도 간단히 보았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귀족의 거만함을 유지하며 평민과 교류하지 않으면서 민중을 무시했다. “인문주의의 근본적인 결함은 민중을 이해하고 그들로부터 배우려 하지 않고 위에서 그들을 가르치려 했다는 데 있다.”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츠바이크는 루터나 마키아벨리와 비교하며 에라스무스 사상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에라스무스의 사상이 역사의 주류가 된 적이 없고, 유럽의 운명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적 없지만, 한번도 현실화되지 않았으므로 패배한 적도 없다. 그 ‘아직 실현되지 않은 이상’이야말로 영원한 회귀성을 가지고 있다. 그의 사상은 몽테뉴로, 스피노자로, 디드로로, 볼테르로, 레상으로, 실러로, 칸트로, 톨스토이로, 간디로, 롤랑으로 이어져 세계주의자의 보편적 사상이 되고 있다.


츠바이크가 에라스무스에 투영시킨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다. 광기의 시대에 이성의 힘을 믿었다. 집단적 광신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한번도 주류가 되지 못했던 사상이지만 그래도 도덕적 각성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게 좌절된 순간, 그가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은 단 한 가지뿐이었던 것이다.


우리의 시대에 다시 에라스무스에 대해 읽는 이유 역시 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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