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역사 속에 기록되면서 개인이든, 공동체든 함께 기록된 것이 바로 범죄일 것이다. 범죄는 개인과 개인의 관계, 공동체와 개인,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이 원인이자, 동시에 결과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범죄 자체는 ‘사회의 거울’이며, 당연히 ‘역사의 단면’을 드러낸다. 생각해보면 역사의 기록은 범죄 기록이 대부분이랄 수 있는데(역사의 흐름에서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전쟁 자체가 범죄다. 적어도 어느 한쪽에서는), 사실 역사를 기술한다면서 대놓고 ‘범죄’를 운운하는 경우는 잘 보지 못했다.
방송 PD이자, 역사 덕후 김형민이 한 작업이 바로 그 범죄라는 사회의 거울을 통해서 역사의 단면, 사회의 모순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통해서 사회가 발전되는 모습을 엿보자는 것이다. 과연 여기의 범죄들이 모두 ‘세상을 뒤흔든’ 것인지에 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하나하나가 의미를 둘 수 밖에 없는 ‘사건’들이라는 것에는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있다.
우선 역사의 흐름을 뒤바꾼, 혹은 역사의 흐름에서 중요한 역할을 범죄가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이 된 가브릴로 프린치프의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 사건이 있고, 홍콩의 부정부패를 급감시킨 부정부패 사건이 있다. 범죄자를 체포할 때 반드시 고지해야 하는 미란다 원칙이 된 범죄자(그가 바로 미란다다)가 있고, <모나리자>를 훔치고 되돌려줌으로써 그 그림을 최고로 유명한 그림으로 만들고, 이탈리아의 영웅으로 떠오른 도둑도 있다. 학대받는 소녀를 구하기 위해 동물보호법을 동원해야 했던 역사도 여기에 넣고 있다.
괴물 같은 범죄자들도 있다. 커플 갱, 일본의 60년대를 뒤흔든 극좌파, 연쇄살인마들, ‘아기 농장’을 만든 괴물, 추종자들을 집단 자살로 이끈 사이비 교주 같은 이들이 그렇다. 야만의 시대에 야만적인 범죄자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도 쉽지 않다. 그것을 그대로 시대의 한계라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지, 그게 아니라 그럼에도 그들을 지독하고도, 파렴치한 범죄자라고 비난해야 할지.
1부가 외국의 범죄들을 다루고 있는 데 반해, 2부에서는 우리나라의 범죄, 범죄자를 다루고 있다. 그래서 더욱 친근(?)하면서도 더 시사적이다. 가난이 만든 범죄자, 일제 강점기의 남편을 죽일 수 밖에 없었던 아내(그리고 그 여인의 미모에 더 열중했던 언론), 성노예가 되었던 식모의 살인, 권력자의 아들(이기붕의 아들 이강석) 행세했던 청년, 일본에 히로뽕을 밀수하면서 애국한다고 우겼던 이들, 고고학자보다 더 많은 보물을 발굴했던 도굴꾼들(그들 덕분에 석가탑에 모셔졌던 무주정광대다라니경이 발굴되었다는 사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의 이야기들이 그렇다. 그 아름다운 소설들을 우리에게 남긴 소설가 김유정의 전형적인 스토커였다는 것은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그런데, 이 책에서는 간첩에 대한 얘기가 한 장(chapter)이나 차지한다. 여섯 꼭지의 이야기다. 남파 간첩 이야기뿐만 아니라, 자생적 공산주의자가 북한의 간첩으로 둔갑하기도 하고, 이중 간첩으로 활동하다 남파된 후 자수했음에도, 간첩으로 활동하기 위해 자수했다는 판결로 사형당할 수 밖에 없기도 했다. 간첩을 ‘만드는 데’ 도사같았던 이들의 이야기도 했다. 다른 데서는 쉽게 한꺼번에 접하기 힘든 내용들이지 않나 싶은데, 남과 북의 간첩 이야기는 우리의 가슴 아픈 현대사의 어두운 단면을 흉측하게 드러낸다.
우리는 물론 대부분 선량하지만, 누구든 잘못을 저지르며 살아간다. 그것이 범죄로 처벌받을지 아닐지는 그것을 판단하는 이의 주관에 따를지도 모른다. 범죄자의 얘기를 읽다보니 세상이 어두워 보이기도 하지만, 이런 이들 사이에서도 이만큼 왔다는 생각에 작은 빛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