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은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에서 《동물농장》을 두고 “내가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목적을 하나로 융합해 보고자 한, 그래서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충분히 의식하면서 쓴 첫 소설이었다.”고 하고 있다. 조지 오웰은 작가가 글을 쓰는 동기에 대해, 순전한 이기심,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 이렇게 4가지를 들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정치적 목적을 가장 앞세웠다. 물론 협의의 정치성이 아니라, “세계를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욕망, 성취하고자 하는 사회가 어떤 사회여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놓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보려는 욕망”을 자신이 추구하는 정치성이라고 보고,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견해 자체도 하나의 정치적 태도이다.”라고 규정할 정도로 자신이 쓰고 있는 글의 정치성에 대해서 깊게 인식하고 있었다.
《동물농장》이 스탈린 치하의 소비에트 사회주의를 비판한 소설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거의 일 대 일로 대응할 수 있을 만큼 스탈린 치하의 소련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비판하고 있다. 1940년대 초에 썼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소련을 적나라하게 비판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스페인 내전을 거치면서 민주적 사회주의자로서 사회주의를 배반한 사회주의에 실망했고, 그래서 소련과 스탈린에 대해 명징한 눈으로 바라볼 수가 있었다.
그렇다고 조지 오웰이 사회주의의 반대자로 돌아선 것은 아니었다. 러시아 혁명에서부터 스탈린의 권력 쟁취 과정, 이후의 계획 경제의 문제점 등에 대해서 신랄한 필체로 비판하고 있지만, 스스로 밝혔듯이 그것을 넘어서서 더 광범하게 적용할 수 있는 비판 정신으로 이 소설을 썼다. 소련의 붕괴 이후 권력 자체의 비판으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이 작품의 보편성을 말해주는 것으로, 명작 내지는 고전이 어떻게 살아남아 읽힐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조지 오웰은 그런 혁명을 배반한 혁명이 가능해진 이유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글자도 읽지 못하고, 앞뒤가 맞지 않지만 현란한 선전에 넘어가는 무지한 동물들이 나폴레옹을 비롯한 돼지들의 독재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는 깨어있는 민중이 민주주의의 요체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동물농장》은 소설에 담긴 비판 정신만으로 의미가 있는 소설은 아니다. 강렬한 풍자 정신과 우화적 기법은 이 소설 자체를 무겁게만 받아들이지 않도록 하며, 명쾌한 문체와 빠른 전개는 이 소설을 지겨움을 느끼며 읽지 않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