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이야기와 인문학의 접목

송은호, 《일상을 바꾼 14가지 약 이야기》

by ENA

현직 약사 송은호가 14가지 약을 인문학과 결부시켜 소개하고 있다. 이보다 나중에 낸 《히스토리X메디슨》이 역사의 장면에서 ‘약’의 역할을 찾아내고 있다면, 이 책은 보다 현실적인 얘기를 많이 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잡학(雜學)이긴 하지만, 도움이 되는 잡학이다. 사실 잡학도 뼈대가 없으면 우왕좌왕하기 마련인데, 송은호는 굳건한 뼈대(약학)를 두고 있으면서 거기에 영양가 있는 살(인문학)을 붙였기 때문에 튼튼하면서도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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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 쉽게 볼 수 있는 약의 기원과 문제점, 그리고 사회와의 관련성 등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다.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도 있었고, 새로 알게 된 것도 많다. 그리고 각 장마다 해당 약을 제대로 사용하는 법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어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기도 한다.


14가지 약 모두가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이야기이지만, 가장 인상 깊은 이야기 하나만 언급하고 싶다.

코로나 시대에 들어 더욱 친근해진 해열제이자 두통약 타이레놀에 관한 이야기다. 어렴풋하게 기억나는 이야기이긴 한데(첫머리만 그렇다), 미국에서 타이레놀을 먹은 사람들이 여럿 죽은 사건이 있었다. 당시에는 타이레놀이 정제형이 아니라 캡슐에 넣어서 팔았는데 누군가 캡슐을 몰래 열고 거기다 청산가리를 섞었던 것이다. 그것을 약국의 약품 선반에 올려놓았고 그것을 사서 먹은 이들이 참변을 당한 것이었다. 여기까지의 이야기가 인상 깊은 게 아니고 다음의 이야기가 내가 진짜 인상 깊게 읽은 이야기다.


1982년 당시 타이레놀을 판매하던 제약회사는 존슨앤존슨이었다. 회사가 특별히 잘못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타이레놀의 시장 점유율은 곤두박질쳤고, 회사의 이미지는 나빠졌다. 이 상황을 해결해야만 했던 회사의 경영진은 고민하다 위기관리 전문 매니지먼트의 핼린 힐버그에게 자문을 구했다. 힐버그는 경영진의 설명을 자세히 듣고는 한동안 말이 없다 입을 열었다고 한다. 그가 제시한 해법은 ‘리콜’이었다. 청산가리가 들어 있는 타이레놀이 판매된 지역만도 아니고 미국 전역의 타이레놀을 전부 회수해서 폐기처분하라는 것이었다. 무려 1억 달러어치! 회사의 입장에서는 곤란했을 것이다. 자신들이 특별히 잘못한 것도 아닌데 그런 손해를 감당하는 게 맞는지에 대해 의문이었을 것이다.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없는데, 힐버그는 다시 입을 뗐다. 책에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러분, 우리는 문제의 원인으로 심판받지 않습니다. ‘문제를 어떻게 책임지느냐’에 대한 심판을 받을 뿐입니다.”


존슨앤존슨의 경영진은 힐버그의 조언을 받아들였고, 무려 3100만 개가 넘는 병을 회수했다. 사장은 뉴스 방송에 출연해서 타이레놀 복용 중지를 권고했고, 모든 정보와 과정을 공개했다. 타이레놀을 캡슐형이 아니라 정제형으로 바꾸었고, 아이들이 쉽게 열지 못하도록 통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기존의 캡슐형 약을 가져오면 정제 알약으로 바꾸어 주었다고 한다. 엄청난 돈이 들고 굴욕적인 일이었을지 모르지만, 단 2 개월 만에 리콜 제품이 돌아왔고, 시장 점유율은 1년 만에 완전히 제자리로 돌아왔다. 회사의 이미지 역시 처음보다 더 좋아졌다. 존슨앤존슨은 지금도 가장 제약회사 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송은호는 이 사건과 우리나라의 살균제 가습기 사건을 비교한다. 난 또 다른 사건도 떠올린다. 약에 관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살아가고, 사회를 움직이는 이야기가 여기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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