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물질, 사회

아이니사 라미레즈, 《인간이 만든 물질, 물질이 만든 인간》

by ENA

우리의 세계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만지는 모든 것이 물질이며, 우리가 보는 것도 물질이며, 우리가 듣는 것도, 우리가 냄새를 맡는 것도 모두 물질이다. 그러니 우리는 ’물질‘의 한계 속에서 살아간다. 이를 다시 얘기하면, 현재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물질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오늘‘, 즉 현대라는 문명도 마찬가지다. 어디 시점부터 현대라 칭할지에 대한, 분명한 정의는 없는 것 같지만 물질의 관점에서 생각하면 대체로 인정하는 것은 강철이 만들어지고, 전신이 도입되고, 사진과 축음기가 시각적, 청각적 기록을 담기 시작하면서가 아닐까? 19세기 말 그런 것들이 도입된 이후 우리는 정말 많은 것이 달라졌다고 여기지만 기본적으로는 여전히 그 ’물질‘들의 한계 속에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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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니사 라미레즈는 재료과학의 차원에서 현대의 문명을 보여주고 있다. 여덟 개의 동사로 이루어진 장(chapter)마다 현대 문명을 만든 물질, 재료와 그것들이 어떻게 탄생하고 발달하게 되었는지를 소개한다.

’교류하다‘에서는 시계의 정확도를 높은 쿼츠(수정)을,

’연결하다‘에서는 세계를 연결한 기차의 재료가 된 강철을,

’전달하다‘에서는 소식을 빨리 전달할 수단이 된 전신의 소재를,

’포착하다‘에서는 사진을,

’보다‘에서는 세상을 밝힌 전구의 소재를,

’공유하다‘에서는 소리를 잡은 축음기에 대해,

’발견하다‘에서는 과학 도구가 중요한 일부가 되어 세상의 모든 물질의 기본 구조를 밝히는 데 이바지한 유리를,

’생각하다‘에서는 우리의 뇌를 바꾼 반도체를 다룬다.


그녀는 이런 이야기를 그 소재와 전혀 관련이 없을 것같은 얘기로 시작한다. 이를테면 철도와 강철 이야기는 링컨 대통령의 장례식으로, 전신 이야기는 미국 가필트 대통령의 저격 사건으로, 축음기 이야기는 우주 탐사선 보이저 호에 관한 이야기로, 유리에 관한 이야기는 플레밍의 페니실린 발견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 책을 읽지 않은 이들은 이게 어떻게 연결되어 갈지 예상할 수 있을까? 그런데. 아이니사 라미레즈는 나중에 보면 원래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준비되었던 이야기처럼 능숙하게 연결시킨다. 그것은 그녀의 사물에 대한 지식이 역사에 대한 깊은 이해와 연결되어 있다는 걸 이야기한다.


그런데 더더욱 이 책이 놀라운 것은 이 이야기들이 사회에 대한 발언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사진에 관한 이야기다. 사진에 관한 장 <포착하다>는 이야기가 이렇게 이어진다. 먼저 린런드 스탠퍼드(스탠퍼드 대학을 세운 부자, 그 사람이다)가 에드워드 마이브리지에게 말이 달리는 모습을 찍어달라고 요청했다. 마이브리지는 놀라운 아이디어로 달리는 말의 모습을 찍어 달릴 때 네 발이 모두 땅에서 떨어진다는 것을 보여 스탠퍼드가 내기에 이길 수 있도록 했다. 그때의 사진은 유리판을 썼는데, 부주의한 아이들이 자꾸 깨는 것에 신경이 날카로워진 한니발 굿윈 목사가 카메라 필름을 발명해낸다. 조지 이스트먼(코닥의 창립자)는 굿윈의 아이디어를 거의 훔쳐와 필름을 상용화한다. 그런데 1960년대 이후 미국에서 흑인 민권운동이 벌어진 이후 흑인과 백인이 함께 사진을 찍게 되면서 당시의 사진이 백인이 잘 나올 수 있도록 최적화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필름은 이미지뿐 아니라 문화적 편견도 포착했다.”). 그리고 폴라로이드 사진 이야기로 넘어간다. 폴라로이드 사에 입사한 과학자 캐럴라인 헌터와 사진사 켄 윌리엄스가 폴라로이드 사진이 당시 아파르트헤이트로 악명을 떨친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흑인들을 옥좨는 도구로 사용된다는 것을 알고 이에 대한 항의를 하고, 그 정책을 철회할 것을 요구한다. 이렇게 달리는 말을 포착해내는 이야기에서 시작한 장은 기술에도 편향이 개입된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여기만이 아니다. 아이니사 라미레즈는 이 모든 이야기에서 사회와 분리된 기술은 없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단순히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니라 생각해봐야 하는 이야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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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현재를 이야기할 때, 현재를 이루고 있는 물질이 무엇인지를 알면 우리 사회의 특징을 알 수 있다. 우리의 뇌가 더 똑똑해지는지, 아니면 퇴보하는지에 대한 논쟁도 우리의 현재 중 아주 중요한 부분을 실리콘이라는 소재가 온통 감싸고 있다는 데서 온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알아야 한다. 그 물질이 만든 세계가 어떤 데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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