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막 상식도 깊이가 있을 수 있다

지식 브런치, 『삶이 허기질 때 나는 교양을 읽는다』

by ENA

잡학(雜學)이라고 하면 왠지 쓸 데 없는 지식 같아 보인다. 그저 술자리나 아니면 가벼운 모임 같은 데서나 소비되는 토막 지식으로 깊이가 없고, 체계적이지 않은 지식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그런 토막 지식도 체계적인 지식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그 토막 지식이 모여 하나의 방대한 체계를 이루기도 한다.


지식 브런치의 『삶이 허기질 때 나는 교양을 읽는다』는 토막 상식이 깊은 내용을 다룰 수 있다는 걸 잘 보여준다. 그리고 그런 얘기들이 어떤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물론 바로 이어진 글이 서로 연관성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이 지식의 주인공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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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알고 있는 것도 있지만, 대개는 그러려니 했던 것들, 혹은 아주 피상적으로만 알았던 것들이 많다. 혹은 완전히 거꾸로 알았던 것들도 있고,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던 것들도 있다. 이를테면 맨 첫 글인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진 이유는 그저 그런 줄로만 알았지, 왜 그런지는 전혀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내용이다. 그런데 그게 전혀 쓸 데 없는 지식이 아니다. 뒤에 나오는 <중세 유럽은 왜 그토록 교회 세습을 막으려 했을까?>라는 글과 연결되면서 현재 한국의 종교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또 다른 글들을 들자면, 3부의 글들이 인상 깊다. 여기의 글들은 그저 단순한 토막 상식이 아니라 세계의 역사와 정세를 다룬 글들이기 때문이다. 호주라는 나라가 생겨난 과정, 유대인이 돈에 민감해진 이유, 중국이 티베트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상황, 미얀마의 민주화가 왜 그리 힘든 것인지, 시리아 내전이 어떻게 해서 시작되었고, 또 왜 그토록 지루하게 이어지는지, 아랍 민주화의 좌절, 인디오를 사람으로 볼 것인지를 논의했다는 (지금으로선 어이없기 그지없는) 바야돌리드 논쟁(결국은 사람으로 보기로 했다는 결론에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그걸 논쟁이라고 해야할지...), 중세시대의 파문의 중대성, 여성의 생리대까지 감시한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세스쿠. 이런 얘기들이 3부의 내용들이다. 단순한 잡학이라고 하기에는 깊이 생각할 수 밖에 없고, 이 글을 쓰기 위한 내공을 짐작할 수 밖에 없는 것들이다.


물론 맨 앞에서 술자리나 가벼운 자리에서 지식 자랑을 할 만한 내용도 있다. ‘파우더 룸’이란 말이 왜 생겼는지, 감자가 어떻게 유럽에서 퍼지게 되었는지(요건 그래도 나도 잘 알고 있던 내용이다), 일본인들이 체격이 왜소한 이유(倭라는 말이 뜻이 왜소하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까지), 이란이 왜 아랍이 아닌지(이것도 좀 알고 있던 것이고), 영국이 ‘신사’의 나라인지, 아닌지, 아즈텍 제국을 무너뜨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여인 말린체의 이야기 등등.


이런 지식을 한 뭉텅이로 선사 받는 것은 종합 선물 세트를 선물 받는 느낌이다. 다 소화하느냐의 문제는 또 다른 문제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게 몽땅 내 것이었으면 하는 욕심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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