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음식을 찾다

이주익, 『불현듯, 영화의 맛』

by ENA

잡다하게 읽다보니 음식에 관한 책을 몇 권 읽긴 했다. 그런데 나는 사실 미식가도 아니고, 음식에 대해서 큰 관심이 있다고 할 수도 없을 것 같다. 할 줄 아는 요리도 거의 없는 형편이고, 먹을 것을 선택할 때도 간단히 빨리 먹을 수 있는 걸 늘 먼저 선택하는 편이다. 말하자면 개인적으로는 음식 자체에 그렇게 큰 의미를 두는 편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럼에도 음식에 관한 책을 꾸준히 찾아 읽는 이유는, 재미가 있어서다. 음식이 사회를 반영하는 모양새가 재미있고, 또 역사를 거치면서, 또 국경을 넘어서면서 일어나는 변용이 늘 흥미롭다. 그러니 음식에 관한 책을 읽더라도 음식을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기억나지 않고, 음식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그 음식이 그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등이 훨씬 기억에 남는다. 말하자면 음식에 관해 읽는 게 아니라 음식에 반영된 ‘무엇’을 읽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주익의 『불현듯, 영화의 맛』은 딱 내 취향의 음식에 관한 책이다. 음식에 관한 책이되, 음식만 얘기하지 않는다. 시작도 음식 얘기로 바로 직진하지 않는다. 모든 음식 얘기가 ‘영화’를 매개로 하고 있는데, 단지 음식과 영화 이야기를 기계적으로 연결하는 게 아니다. 영화를 매개로 음식 얘기를 하긴 하는데, 그것 자체로 끝나지 않고 참 다양한, 살아가는 이야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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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이 책이 참 재미있는 이유는 음식과 영화와의 관계를 다양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음식이 영화에서 어떻게 이용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영화에서 배우가 먹는 음식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거의 확실한 얘기부터 자신이 해석한 얘기까지. 영화에서 보여주는 음식이나 무얼 먹는 행위가 국가나,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개인이 어떤 사회적 지위를 갖는지, 어떤 마음 상태인지가 다 드러난다는 것이다.


음식 자체에 대한 얘기도 재미있다. 이를테면 저자의 고향인 강원도에서 먹었던 메밀에 대한 얘기, 감자에 대한 얘기가 있는데, 단지 고향의 맛, 이런 게 아니라 그게 어떻게 강원도에까지 왔는지, 그리고 다른 곳에서는 어떻게 이용되는지, 그리고 또 현재는 어떻게 변화해왔는지에 대해서 다양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말하자면 음식에 관한 주변 지식으로 가득 차 있다는 얘기다. 모두가 흥미를 끌지 않을 수 없는 얘기들이다.


음식에 관한 저자의 생각도 분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이 있다. 가장 확실하게는 소고기에 대한 얘기가 있다. 한국, 일본, 미국 등에서만 얘기하는 마블링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그것이고, 냉면에 대한 얘기도 그렇다. 그러면서 단순히 옛 음식에 회고에만 머물지 않고, 보다 여유로워진 한국 사회에서 음식이 어떤 방식으로 발전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단순하게 깔끔하거나 화려한 것을 선호하는 게 아니다. 음식에 대한 철학 같은 것을 이야기하는데, 만드는 사람도 음식 하나하나에 보다 진지하게 접근해야 하지만, 소비자도 중요하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다. 보다 나은 음식을 원해야 음식점도 그런 음식을 내놓는다는 것이다.


물론 영화 이야기도 재미있다. 본 영화도 있는데, 그 영화에서 먹는 장면이 어떤 게 있었나 싶은데 저자는 그걸 잘 찾아낸다. 관심의 차이라기에는 영화에 대한 집중력의 차이다(이주익은 영화제작자이니 당연한 거긴 하지만). 오래된 영화도 많이 있고, 또 보지 못한 외국 영화도 많다. 몇몇 영화는 적극 추천하고 있는데, 단지 음식 먹는 장면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영화 자체로 훌륭하다는 평가다. 꼭 봐야지 하며 메모해놓은 영화도 몇 개 된다.


이제 아마도 영화를 보면서 무얼 먹는 장면이 그냥 지나가는 장면처럼 여겨지지 않을 것 같다. 지금 이 장면에서 이 음식을 먹는 건 감독이 무엇을 의도한 것인지 생각해볼 것 같고, 영 어울리지 않는다면 비판할 것 같고, 혹은 너무나도 그럴 듯하고 의미하는 바가 절묘하다면 손뼉을 칠 것이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영화를 보는 눈이 훨씬 깊어질 것이다.


재미있어 순식간에 읽었지만,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책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게 궁금한데 잘 기억이 나지 않으면 다시 펼쳐 들 책이다.

한중일의 만두가 어떻게 다르더라? 설렁탕과 곰탕이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옥수수의 문제는 뭘까? 미국의 다이너라는 게 뭘까? 진짜 냉면은 어떻게 만드는 걸까? 교양 있게 먹는다는 건 뭘까? 왜 프랑스 요리는 훌륭한가? 등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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