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진화생물학자 테오도시우스 도브잔스키는 "진화의 관점을 제외하면 생물학에서 의미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했다. 이제는 너무나도 많은 저자들이 인용해 식상한 말이 되어버렸지만, 그 사실은 역설적으로 이 말이 진실, 혹은 진실에 가깝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생명 현상을 바라보고 생각할 때 진화의 관점을 취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단지 자연관이나 종교관에 머물지 않는다. 단지 존재하는 것으로 바로보는 생명관은 너무나 정적이고 수동적이라서 생명에 깃든 역동성을 바라보지 못한다. 생명의 역동성은 그것 자체로 놀라운 것이라는 생각에도 이르지 못한다(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생명체와 생명체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도 보이는 것을 넘어선 본질적인 원리에 대해 접근하기 위해서도, 그런 관계가 가져오는 커다란 위안과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도 ‘진화의 렌즈’는 필요하다.
책장을 열기 전에 ‘생명의 아름다움’이라는 제목, 나아가 명제에 대해 생각해 봤다. 무엇을 두고 생명이 아름답다고 하는가? 꽃이 아름답다는 것과 같은가? 개미들의 진사회성과 같은 집단의 놀랄만한 구조가 아름답다는 것과 같은 것인가? 생명체와 생명체가 서로 협력하거나 경쟁하는 그 상황이 예측할 수 있거나, 혹은 예측할 수 없거나 하는, 그런 측면에서 아름답다는 것인가? 아니면 그냥 생명이나 아름답다고 해야 하는 것인가?
그냥 생명이 아름답다고만 한다면, 사실은 고개를 갸웃거려야만 한다. 생명체의 모습이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것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것, 심지어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버리게 만드는, 그런 추한 것도 없지 않다. 그러니 모양새로만, 혹은 냄새로만, 아니면 행태로만 생명을 아름답다고는 할 수 없다. 군집의 구조도, 생명체 사이의 관계 역시 그것 자체로 아름다움을 느낀다고 하는 것도, 이쪽 연구자가 아닌 경우에는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니 생명을 아름답다고 할 때, 그것은 분명 그런 것을 뛰어넘는 그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
(제목에서도 드러나고, 나도 앞에 썼듯이) 저자들은 ‘그 무엇인가’를 ‘진화’에 두고 있다. 그렇다면 진화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봐야 한다. 진화를 ‘진화론’으로 오해하지는 말자. 진화는 그야말로 먼 과거에서부터 지금까지 벌어져 온 모든 과정과 현상이다. 진화론은 그걸 설명한다. 저자가 생명을 아름답다고 했을 때, 그 아름다움을 보는 창은 진화론이 아니라 진화 그 자체다. 생명체가 자연 환경에 적응하거나 도태되면서 현재의 상태까지 이르게 된 그 과정, 그 현상을 봤을 때 우리는 (다윈의 표현대로) 장엄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고, 그 장엄함은 그대로 생명의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진화에 관한 책도 정말 많고, 진화를 통해 생명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 책도 무수히 많다. 이 책도 진화에 대한 시각 자체가 다른 보편적인 진화에 관해 다루는 책들도 그리 다르지 않다. 그만큼 진화에 대한 보편적인 이론은 이제 상당히 안정적이다. 그런데 이 책은 좀 다른 느낌을 준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많은 예다. 언제나 진화 현상을 설명하는 예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데, 이 책은 그 제한을 많이 넘어서고 있다. 하나의 예를 들자면 현화식물의 물관과 침염수의 헛물관의 두께 등에 대한 비교가 있고, 동물들 사이의 상호의존성에 대한 무수한 예들도 포함된다. 아마도 해당 전문 분야에서는 다 알고 있고 상식처럼 여겨지는 사례들이겠지만, 이것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 내는 것은 저자의 능력이고, 독자에게는 행복이다.
그리고 많은 자료 사진들이다. 아마도 에크버크 자일스 리가 이야기하는 진화와 생물 사이의 상호 작용의 거의 모든 사례는 공저자로 올라 있는 크리스티안 지글러의 사진으로, 그리고 그림으로 단단하게 뒷받침되고 있다. 사진과 그림이 사례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지만, 보다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게 할 뿐만 아니라, ‘생명의 아름다움’을 진화의 렌즈로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어쩌면 이 책이 생명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 책이라고 한다면 그건 그런 그림과 사진이 더 큰 몫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진화 자체는 선(善)도 아니고, 악(惡)도 아니다. 긍정적인 것도, 부정적인 것도 아니며, 단순한 원리로 지구상에서 생명체가 살아온, 살아가는 원리일 뿐이다. 하지만 그 단순한 원리가 그 복잡한 관계를 낳았으며, 그 다채로운 생명의 모습을 만들어냈다. 그 놀라운 세계를 아름답다하지 않으면 무엇을 아름답다 해야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