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維新), 야수의 연대기

홍대선, 『유신 그리고 유신』

by ENA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였지만) 저학년 때까지였지만, ‘유신의 날’이란 게 있었다. 어렴풋한 기억으로 ‘유신의 노래’도 있었던 것 같다. 그게 무슨 날인지는 아마 알면서도 몰랐을 거다. 안다는 것은 ‘10월 유신’이라는 게 있었고, 그게 이 나라를 ‘구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들었으므로 알고 있었다는 의미고, 몰랐다는 건 그 ‘유신’이 정말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몰랐기 때문에 몰랐다는 의미다.


10월 유신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깨닫고 난 후 바로 그 유신이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본 딴 것이라는 것은 알지 못했다. 그걸 알게 되는 데는 아주 긴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물론 메이지 유신이 어떤 내용을 가진 것인지를 몰랐으니 어떤 면에서 박정희의 유신이 일본의 메이지 유신에서 무엇을 가져왔는지도 몰랐다. 다만 박정희의 유신이 독재와 장기집권의 도구였다고만 바라봤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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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선의 『유신 그리고 유신』은 두 개의 유신을 다루면서(주로는 일본의 것을 다루지만) 제도로서의 유신, 즉 피상적 도구로서의 유신보다는 정신으로서의 유신, 본질적인 수단으로서의 유신을 이야기한다. 1868년에 이뤄진 메이지 유신 역시 유신과 관련한 직접적인 과정만을 다루지 않는다. 거의 생각하지 못할 13세기의 여몽연합군의 일본 정벌에서부터 시작해서 1945년 태평양전쟁에서의 패망까지를 다룬다. 1274년의 여몽연합군이 일본 정벌을 시도했다(몽골의 입장에서는 거의 얻을 게 없는 정벌 행위였다) 실패한 이후 일본이 스스로를 생각하는 관점이 달라진 것을 유신의 ‘씨앗’으로 보고 있으며, 임진왜란 이후 도쿠가와 막부(에도 막부) 시대의 평화가 이어지다 페리제독의 흑선이 개항을 요구하면서 비로서 잉태된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메이지 유신을 성공시킨 젊디젊은 지사들의 면모들을 소개하면서 그들이 얼마나 무모한 정신을 가졌는지, 순수함을 추구했는지, 그래서 또 얼마나 더 무모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런 무모한 정신이 청일전쟁을 가져왔고, 러일전쟁을 일으켰으며, 나아가 조선의 식민지화를 성공시켰고, 만주사변, 중일전쟁, 최종적으로는 2차 세계대전,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거의 성공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이런 전쟁들을 벼랑끝 전술처럼 밀어붙여 기적과 같이 승리해나간 것이 일본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를 대단하다고 여겼으며, 또 그런 전쟁을 통해서만 유지되는 나라가 되었다. 국가의 통치 행위나, 전쟁 등을 윤리보다는 미학적 관점에서 보는 아주 기묘한 상황이 연속되기도 했다. 야만스럽되, 그 야만을 순수로 포장해간 것이 일본의 유신이었다.


그 퇴폐적 제국주의를 가져온 유신은 1945년 너무나도 무모했던(정말 승리를 기대했을까?) 미국과의 전쟁에서 철저히 깨지고서야 ‘임종’을 맞았다. 그런데 그 유신은 그들이 지배했던 한반도에서 부활했다. 바로 ‘긴 칼을 차고 싶어’ 혈서로 천황에게 충성맹세문을 써가며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했던, 동학접주의 막내아들, 저명한 사회주의자의 귀여운 동생에 의해서 말이다.


홍대선은 박정희라는 인물에 대해서 그리 박한 평가를 내리지는 않는다. 그의 유신을 아주 일본적인 스타일이었다는 관점에서 다룰 뿐이다. 박정희라는 인물의 진정성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으면서, 그 진정성이 다른 관념과 섞이면서 왜곡된 행위로 나왔다는 관점이다. 이게 좌나 우, 어느 쪽에서도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입장으로 보이는데,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눈여겨 볼 입장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김재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김재규에 관해서는 여기에서 다루고 있는 관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나 글을 읽을 적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신선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박정희와 김재규의 관계는 흥미롭기 그지 없다.


이제 일본의 역사를 읽으면서 분노를 가질 단계는 지났다. 그들이 어떤 생각으로, 어떤 과정으로 조선을 집어 삼켰으며, 또 얼마나 혹독하게 식민지를 다뤘는지는 이제 객관적인 숙고의 대상이 된 것 같다. 물론 잊어서는 안되며, 아직도 청산되지 못한 범죄에 대한 댓가는 반드시 받아내야 하지만 말이다. 역사는 역사로서 냉정하게 바라볼 때 우리의 입장이 선명해지고,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매우 논쟁적인 주제를 다루었지만, 그런 냉정한 시각을 가진 책으로서 오히려 더 선명한 문제의식을 가진 책으로 『유신 그리고 유신』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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