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은 책의 제목에 대한 선입견부터 얘기해본다. 대학 수시입시에서 자기소개서에는 항상 자신이 읽은 책 몇 권을 쓰게 되어 있다.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그 몇 권이 그 학생에 대해서 무엇을 보여주는지에 관해 확신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래도 역기능보다는 순기능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그 단 몇 권이지만 책을 읽는 수고를 하고, 책에 대해 몇 자를 적는 품을 들이는 게(무척이나 고심하며) 의미 없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제대로 읽지도 않고, 어디서 긁어온 내용을 짜깁기하거나, 누군가에게 대필하는 경우가 없지는 않겠지만 모든 제도는 악용하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고, 그런 이들을 모두 걸러내겠다는 의도로 그런 걸 제출하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대학에서 학생들이 어떤 책을 읽었는지를 가지고 심각하게 점수를 매기지는 않을 듯하다. 너무 과하게 성의가 없다면, 혹은 너무 동떨어진 얘기를 한다면 모를까? 고등학교 시절 그래도 몇 권의 책을 읽고, 그에 대한 감상을 남기도록 하는 것에 의의를 둔다고 봐야 한다. 물론 그래도 ‘all or nothing’인 입시에서 사소한 것은 없기에 그 목록을 작성하는 것에 무척 신경 쓸 수밖에 없지만.
“서울대 지원자들이 가장 많은 읽은 책”이라는 의미는 그 자기소개서에 언급한 책들이란 뜻이다. 학생들은 자신이 지원하는 단과대학, 학과에 가장 어울릴만한 책을 고를 것이다. 아무리 자신의 삶에서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라도 너무 쉽지는 않은 책을 넣을 것이며(아주 어린 시절 읽은 동화나 그림책이 가장 감명 깊은 경우가 왜 없겠냐만은 그런 책을 대학입시 자기소개서에 넣는 경우는 거의 없지 않을까?), 자신의 지식, 자신의 포부, 자신의 능력 등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책일 것이다.
그런 책을 소개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 책의 목록은 요새 학생들이 어떤 책을 읽는지, 더 정확하게는 어떤 책을 자신의 능력과 포부, 관심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하는지를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는 조금 과한 자랑이 담겨 있기도 하고, 소박한 소망이 담겨 있기도 하다. 또 어쩌면 의심스러운 지점도 있긴 하지만, 요즘 학생들이 이런 책도 소화해내는구나, 하는 놀라움도 있다.
책의 제목이 주는 선입견을 이렇게 정리하고, 이것을 뒤로 잠깐 제쳐 둔 뒤 책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이 책은 명백히 북 칼럼니스트가 쓴 책에 관한 책이다. 그러니까 어덯게 하면 자기소개서를 잘 쓸 수 있을까를 안내하는 책도 아니고, 자기소개서에 들어가면 좋을 책을 소개하고, 추천하는 책도 아니다(물론 그렇게 받아들일 이들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요즘 학생들이 자신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하는 책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그 책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을 통해 그 가치관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를 짐작하고자 하는 책이다. 거기에 이 책을 가이드 삼아 소개된 책을 읽어나갈 때의 주의할 점까지 친절히 안내하는 책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이 책을 읽은 이들이 여기에 소개된 책을 읽기를 바라는 마음의 책이기도 하지만, 이 책 자체로 요새 젊은이들에 대한 이해를 조금이나마 높일 수 있는 의미를 갖는 책이기도 하다.
조금 의외인 책들이 있다. 각각 긍정적인 쪽과 부정적인 쪽을 하나씩만 들면,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될 때』와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가 그것이다.
폴 칼라니티의 『숨결이 바람될 때』는 내가 가끔씩 가장 감명깊게 읽은 책을 꼽을 때 늘 들어가는 책이다. 암으로 죽음을 앞둔 신경외과 의사가 죽음이 아니라 삶에 대해 쓴 책이다. 고등학생이 죽음에 관한 책을 읽고, 그것을 자기소개서에 쓴다는 게 조금은 의아스럽고 뭔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책이 죽음이 아니라 삶을 이야기하는 책이며, 게다가 의과대학을 지망한 학생들이 꼽은 책이라는 데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다. 이런 책이 많이 읽힌다는 것은, 그것도 이제 생명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해야 할 학생들이 읽는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고, 또 긍정적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가 이 목록에 들어있는 데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상당히 부정적이다. 이 책이 양자역학을 세우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과학자가 고급의 철학적 담론을 펼친다는 점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책은 자기고백이 아니라 자기기만이라고 생각한다. 어쩔 수 없이 독일에 남았고, 핵무기 개발 책임자가 되었지만 거의 고의로 핵무기 개발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았다는 것은, 적지 않은 문헌으로 부정되고 있다. 독일에서 핵무기가 개발되지 못한 것은 능력 때문이었지, 의지 문제가 아니었다. 그 의지에는 분명히 책임자였던 하이젠베르크가 있었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법칙’이라든가, 양자역학의 행렬식 등은 위대한 업적이고, 그것을 인정해야 하지만, 그의 자기변명 같은 책을 학생들이 감명 깊게 읽고 자기 인생관을 형성하는 데 의미 있는 책으로 올린다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저자인 박균호 선생도 이 책의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를 함께 소개하는 것은 그런 뜻이리라 생각한다.
책을 읽으며 이런 상상도 해봤다. 공과대학 지원자가 많이 읽은 책에 『데미안』이 들어가고, 인문대학 지원자가 많이 읽은 책에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이 책에서는 소개하고 있지 않지만, 수의과대학 지원자들이 많이 읽은 책 2위다)가 들어가면 어떨까? 물론 그런 책을 읽은 학생도 있을 것이다. 다만 자신이 지원하는 대학에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하고 조정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과와 이과로 나뉘어져 읽는 책마저 구분되는 것은 분명 바람직하지 못하다. 어쩌면 박균호 선생이 이 책을 쓰면서 조금은 벅찬 과제였을 ‘이과’ 쪽 책을 끝까지 읽어내고, 그 의미를 파악해서 정성스럽게 쓴 이유가 그것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끝으로 한 가지 염려스러운 점은, 이 책이 여기에 소개된 책을 읽지도 않고, 자기소개서를 쓰는데 활용되거나, 혹은 읽었지만 자신의 생각은 거의 없이 박균호 선생의 생각을 자신의 생각으로 둔갑시키는 일이 없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역시 좋은 의도를 악용하는 이들이 없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좋은 의도를 가진 일을 하지 않아서는 안 되며, 그것을 폄훼해서도 안 된다. 이 책을 읽고, 여기의 책, 아니 여기의 책을 넘어서서 많은 책을 읽는 이들이 생겼으면 좋겠다. (교보문고의 적자에 이은 43년만의 첫 희망퇴직 뉴스를 보면서 씁쓸한 생각이 들지만 아주 약간의 희망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