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너무도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캐면 캘수록 알지 못하고, 알 수 없는 것들이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시간은 분명 물리적 성질의 것이지만, 생물학은 물론 심리학에서도 정말 진지하게 다룬다. 문학 역시도 시간을 배제하고 존재할 수 없다. 그렇게 다루는 시간이라는 대상이 서로 다른 걸 얘기하는 것 같으면서도 결국은 같은 것이라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과학 저술가 슈테판 클라인의 『안녕하세요, 시간입니다』은 바로 그 시간에 관한 여러 궁금증을 풀고 있는 책이다. 풀고 있다고 하지만 대체로는 확정적인 것은 아니면 지금까지 시간에 관한 오해가 어떤 것들이 있었고, 그것들은 어떻게 정리되고 있으며, 또 현재까지의 연구 성과에 따르면 시간이란 무엇이며, 그 시간과 관련한 우리의 기억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풀어내고 있다.
여기서 다루는 시간은 물론 우리가 시계로 다루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분과 초 등으로 잴 수 없는 시간이기도 하다. 바로 그 서로 다른 면이 물리학의 시간과 심리학의 시간의 차이이기도 한데, 이것을 통합하여 설명하는 어려운 작업을 슈테판 클라인이 하고 있는 것이다. 다 읽고도 시간에 관해서, 이제는 마스터했다고 힘든 것이 원래 시간의 속성이라 몇 가지 인상 깊은 부분만 정리해보면 이렇다.
우선은 청소년은 기본적으로 올빼미족이라는 것이다. 그런 현상의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지만, 하여튼 그렇다. 슈테판 클라인에 따르면 만 18세가 되면 멜라토닌이 23시경에나 분비된다. 그러니 그 이전에 잠에 들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 학교에 가라고 하는 게 얼마나 고역이겠는가?
사람에게 가장 기본적인 시간 단위는 어떻게 될까? 아마도 3초이지 않을까 싶다. 19세기에 세계 최초로 혈압을 재는 데 성공한 칼 폰 피어오르트가 자신을 이용해 실험한 결과에 따르면, 감각에 의존한 시간 감각은 3초가 기준이었다. 긴 시간은 3초로 줄여서 받아들이고, 짧은 시간은 3초로 늘려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 3초는 우리가 전화번호 등을 외우는 데도 다시 등장한다. 3초 안에 해결되지 않는 것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니 숫자를 외울 때 7개 넘어가는 것은 쉽게 기억하지 못한다.
순간의 의미는 바로 과거와 현재의 날카로운 경계를 이루는 현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가리킨다. 현재 물리학자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짧은 섬광은 1018분의 1초라고 한다. 그리고 이론적으로는(양자물리학에서 얘기다) 시간을 1043분의 1초까지 쪼갤 수 있다고 한다(플랑크의 시간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이게 순간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생물학적인 현재, 순간은 어떻게 될까? 우리가 어떤 것을 구분하는 데 한계가 바로 그 현재, 내지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게 청각과 시각이 다르단다. 청각은 100분의 1초를 구분할 수 있는데 반해, 시각은 10분의 1초의 간격을 두고 있어야 서로 다른 것으로 인식할 수 있다. 청각이 더 예민한 것이다.
미국의 기술사가 루이스 멈포드는 “현대 산업사회를 탄생시킨 것은 증기선이 아니라 시계”라고 했다고 한다. 우리가 인식할 수도 없는 초라는 단위, 그리고 생체 리듬보다 훨씬 짧은 분 단위를 통해 우리의 행동을 옥죄는 것은 바로 ‘우리’다. 슈테판 클라인은 시간을 여유롭게 사용하자면 몇 가지 방식을 제시하긴 하는데... 사실 몰라서 못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의 노예가 되어버린 나를 생각하면서도, 그래도 이 책을 읽는 게 내 의무가 아니기에 그래도 나는 내 시간을 내가 선택했다는 자기 위로를 한 번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