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독(syphilis)은 이미 매독에 걸렸거나 매독균을 보균한 사람과의 성 접촉으로 감염된다. 매독을 일으키는 것은 트레포네마 팔리듐(Treponemma pallidum)이라는 나선 모양으로 생긴 스피로헤타(spirochetes)에 속하는 세균이다. 이른바 ‘콜럼버스의 교환(Exchange of Columbus)’에 의해 아메리카 대륙에서 유럽으로 전해졌다고 하지만, 이에 관해서는 논란이 많다.
영국의 헨리 8세와 러시아의 이반 뇌제의 광기도 매독으로 인한 걸로 보고 있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의 실제 모델이라고 하는 체사레 보르자도 매독으로 고생하였다고 한다. 역사학자들은 16세기 유럽 인구의 약 20% 정도가 매독에 감염되었던 걸로 추산하기도 한다(이 책에서는 시기를 이야기하지 않고 약 15% 정도로 낮춰 쓰고 있다).
1기 매독에서는 통증이 없는 피부궤양만 주로 발생하고, 증상도 감염 이후 상당 기간 이후에 나타나기 때문에 다른 질병과 구분하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 그래서 매독에 걸린 것을 숨길 수가 있었고, 매독에 의해 죽더라도 다른 질환으로 죽은 것으로 속이는 경우가 많았다. 윌리엄 오슬러와 같은 의사가 “매독을 아는 의사가 의학을 아는 의사다.”라고까지 한 이유가 있다. 그런데 여성의 경우에는 1기 매독 증세인 피부궤양이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2기 매독이 되면 목을 돌아가면 멜라닌 색소가 나타나는데, 이를 두고 “비너스의 목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르네상스 말기에 목 부근의 레이스 주름 장식을 몇 겹으로 만든 의상이 유행했는데, 여자들에게서 나타나는 매독 2기 증상을 감추기 위한 것이었을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어떤 기관에도 적을 두지 않은 독립 사학자인 데버러 헤이든은 니체의 지병을 연구하던 중 매독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매독이 어떻게 발생했는지(논란은 여전하며 아마 끝내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도 관심을 가졌지만, 특히 헤이든이 관심을 가진 것을 매독을 죽은 것 같은 사람들이다. 니체에서 시작된 관심은 비슷한 시기의 다른 문학가들, 보들레르, 플로베르, 모파상으로 이어졌고, 또다시 베토벤이며, 고흐와 같은 음악가, 화가 등으로도 이어졌다. 이 목록은 가장 존경받는 미국의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그리고 그의 부인)도 포함하며, 20세기 중반 페니실린이 등장하기 전, 아마도 가장 유명한 희생자 중 마지막 인물이랄 수 있는 히틀러까지 마주하게 된다.
데버러 헤이든의 그렇게 이 책은 역사 속에서 매독에 걸린 것 같지만, 매독에 걸렸다고 확정되지 않은 많은 인물을 조명하고 있다. 거의 모두 진짜 그들이 매독에 걸린 것인지가 논란인 인물들인데, 매독이라는 병의 성격 때문에 그렇다. 우선은 (앞서 얘기한 대로) 다른 질환과 구별이 힘들다는 점이 있다. 매독은 그것만이 독특한 증상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다른 질환들의 증상을 복합적으로 나타낸다. 그리고 오랜 시간에 걸쳐서 나타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밝히기가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누구도 자신이 매독에 걸렸다는 것을 밝히기를 꺼려했다는 점이다. 성병(혹은 성매개질병)이란 게 그렇다. 어떤 경로로 매독에 걸렸든 그것은 부도덕의 징표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본인도 (치료를 받으면서도) 매독에 걸린 사실을 숨기려고 했으며, 사후에도 추종하는 인물들이 그 사실을 부정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데비러 헤이든은 그렇게 매독에 걸렸다고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은 인물들(거의 인정되는 인물들을 포함해서)의 증상과 행로를 추적해서 왜 매독에 걸렸던 것인지를 밝혀내고 있다.
가장 자세히 다루는 인물은 히틀러와 프리드리히 니체다. 가장 자료가 많은 인물이기도 하며, 논쟁이 심한 인물이기도 해서일 것이다. 그런데 그들을 비롯하여 매독에 걸렸음직한, 걸렸던 것이 거의 분명한 인물들에 대해 읽다가 드는 생각이... 이게 왜 중요하지, 이런 것이었다. 히틀러의 경우 그가 전쟁 후반에 정신병적 증세를 보였다는 것은 거의 확실한데, 그게 매독 때문이었다는 것이 데버리 헤이든의 생각이다. 그래서 그의 광기를 매독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닐까?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매독이 그의 정신세계를 황폐화시켰다고 한다면, 그 매독을 옮겼다고 여겨지는 어떤 유태인 여인 때문에 유태인을 혐오하고 학살에 이르게했다고 하면, 과연 역사적으로 온당한 평가일까 싶다. 니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의 눈부신 작품이 매독으로 인한 정신적 혼란 속에서 온 것이라는 설명,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좀 난감하다.
물론 사실을 알아내는 것은 중요하고, 또 그 사실 속에서 진실을 추구해야 하는 것은 옳다. 그리고 여기의 많은 내용이 하나하나 뜯어보면 흥미로운 내용들이다. 그런데 이 사람도 매독, 저 사람도 매독. 이런 식으로 이어지다보니 매독이 그만큼 무섭고, 흔했던 질병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그 인물들의 증상과 행적의 모음이 그런 인식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솔직하게 의문이다. 특히 요즘 항생제의 시대에 말이다(요즘 매독으로 고생하는 이가 얼마나 되는지는 찾아보질 않아서 모르겠지만).
한참 재미있게(?) 읽다 문득 정신차려보니 왜 이게 재미있지, 이런 생각이 들게 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