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가 역사에서 커다란 역할을 했을 것이란 짐작은 해왔다. 이를테면 우리나라 순조 연간의 가뭄과 그에 이은 전염병이 조선의 몰락을 가속화했다는 얘기도 들었었고, 중국 명나라의 멸망이 역시 기후 변화로 인한 가뭄과 기근, 그리고 이어진 농민 반란 때문이었다는 것도 어디선가 읽었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배경이고, 조건이었을 뿐 주된 요인은 위정자들의 무능력과 부패 등으로 인한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기후? 그건 부차적 요인이었을 뿐이라고.
그런데 이동민 교수의 『기후로 다시 읽는 세계사』를 읽고 보니 생각을 좀 달리 해야할 것 같다. 고대 문명의 발생이 기후적으로 유리한 조건인 곳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은 물론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거의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도 지정학적인 조건 때문이었다는 것에서 시작하여 세계사의 굵직굵직한 흥망성쇠가 기후 변화로 인한 것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여러 연구 결과들을 인용하며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이 책에서 인상 깊은 것은, 기후 때문에 무슨 일이 벌어졌다고 했을 때 주로 언급하는 것은 국가의 위기와 멸망인데, 여기서는 세력이나 국가의 발흥 역시 기후의 변화로 인한 것이었다고 설명하는 점이다. 이를테면 중국이 동아시아의 거대한 중원을 차지하고 거의 분열 없이 커다란 국가를 이어온 것은 한나라가 건국한 직후 기원전 200년 무렵 중국 전역의 기후가 온난습윤해진 것과 관련이 깊다는 것이다. 그후로 여러 부침이 있었지만 전체적인 따뜻한 기후 때문에 중국이라는 나라가 통일 국가를 이룰 수 있었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칭기스칸의 몽골의 영광이나 누루하치의 여진(후금, 나중에 청)의 발흥 역시 칭기스칸이나 누르하치라는 걸출한 영웅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그 시기에 몽골 지역이 우기에 접어들었다는 점이나 건진여진이 살던 요동 반도의 위치 때문에 중국대륙이 한냉화가 불어닥쳤음에도 큰 피해를 입지 않았던 점도 무시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것들은 지리학계나 역사학계에서 얼마나 상식적인 것인지 모르겠지만, 솔직하게 말하면 그래도 꽤나 역사에 관심을 가져왔던 나도 거의 잘 알지 못했던 내용들이다. 그만큼 세계사의 흐름에서 기후의 역할에 대해서 제한적으로만 기록해왔던가, 내지는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이란 얘기가 될 것이다.
다만 이렇게 기후 중심으로 역사를 기술하다보니, 어떻게 보면 모든 게 기후 때문이다란 식의 ‘기후 환원주의’처럼 읽히기도 한다. 물론 이동민 교수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제한적으로 받아들지던 역사의 흐름에서 기후의 역할을 강조하다보니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 이렇게 기후가 역사의 흐름을 바꾼 얘기들을 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지금의 기후 위기 때문이다. 산업화 이후 화석연료의 사용으로 인한 기온의 급상승은 기후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 지구 문명이 갑자기 무슨 일이 벌어지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보이지만, 지금까지 역사에서 기후 변화가 벌인 일들을 보면 1, 2백 년에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지금까지의 역사의 흐름과 그다지 다르다고 보지 않을 듯 하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기후를 통해서 세계사의 흐름을 보는 것은 정말로 역사를 공부하여 현재에 반성과 도움을 받기 위해서라는 교과서적인 답변에 딱 들어맞는 이야기가 되는 셈이다.
기후 때문에 사라져버린 마야 문명, 기후 때문에 사분오열한 로마 제국, 소빙기의 영향으로 무너진 막강한 한족의 화약 제국 등등의 운명을 우리가 밟지 않기 위해서는 기후 위기가 정말로 위기란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역사에서 배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