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기 전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인터뷰하는 장하준 교수의 얘기를 들었다. 주로는 경제 정책에 관한 얘기를 했지만, 인터뷰 말미에는 이 책 얘기를 했다. 아마도 겸사겸사였지 않나 싶다. 경제 정책이나 사회와 관련해서는 주로 ‘자유’에 관한 얘기를 했다. 특별한 얘기는 아니었다. 다만 케임브리지대학 경제학과 교수였고, 지금은 런던대학교 교수라는 그의 위치가 주는 무게감은 있었다. 그리고 책 얘기는, 경제학이라고 하면 지레 겁을 먹는 사람들에게 그래도 음식 얘기로 시작하면 그래도 따라오지 않을까 싶어 이런 책을 썼다고 했다. 그리고 고등학생이라도, 아니 중학생이라도 읽을 수 있는 내용이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괴상한’ 책은 아니다. 진짜 얘기하고 싶은 것을 얘기하기 위해서 완전히 다른 소재에서 시작하는 책은 많으니까. 경제에 관한 얘기를 음식 ‘재료’를 통해서 하는 글도 제법 봤던 것 같다. 다만 이처럼 본격적으로 ‘요리’ 얘기를 전면에 두는 경우는 별로 읽지 못했다. 물론 (직접 고백하듯이) 음식, 혹은 요리 얘기에서 경제 얘기로 넘어가는 이음매가 그리 매끄럽지 않은 글들이 제법 있다. 말하자면 앞부분의 요리 얘기와 뒷부분의 경제 얘기가 거의 관련이 없어 보이는 글들이다. 대부분 몇 단계를 거쳐야 경제 이야기로 넘어갈 수 있는 글들이다.
예를 들어보면, 당근에서 시작한다. 당근으로 할 수 있는 요리 얘기를 한다. 당근이 원래 주황색이 아니었지만(원래 흰색), 보라색 당근과 노란색 당근이 개발되었고, 네덜란드에서 지금과 같은 주황색 당근이 개발되었다는 얘기가 이어진다. 이 ‘주황색’ 당근에는 원래의 당근에는 없었던 비탄민 A가 들어있다(베타카로틴이라는 물질이 몸속에서 전환된다). 이제 비타민 A 이야기다. 이른바 ‘황금쌀’이라고 명명되었던 신젠타라는 기업에서 특허를 소유한 비타민 A가 풍부한 쌀 개발 이야기다. 그 다음에는 무슨 얘기가 이어질까? 보통은 GMO 얘기가 나오거나, 혹은 이 황금쌀을 아프리카에서 개발하지 못하게 막는 환경보호론자 비판 얘기가 나오거나 한다. 그런데, 장하준은 현대의 기술 개발의 견인차가 되었던 특허 얘기를 끄집어낸다. 지금은 오히려 혁신의 방해물이 되고 만 특허 제도 얘기다. 그리고 결론은 이 특허 제도를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에 관한 몇 가지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이런 식인데, 감히 추론해보면 장하준 교수는 몇 개의 글 꼭지(먼저 써놓았다는 ‘멸치’와 ‘도토리’ 얘기 등)를 빼고는 먼저 어떤 경제 이야기를 할 것인지를 정하고, 그와 관련한 음식과 요리를 찾아 나섰다고 본다. 그게 아주 행복하게 맞물리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아주 정합적으로 어울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음식가 요리 얘기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만 하단 얘기는 하고 싶다.
그래도 무엇보다도 이 책에서 읽어야 하는 것은 장하준 교수의 경제에 관한 생각들이다. 이전의 책들, 『나쁜 사마리아인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이렇게 보니 내가 장하준 교수의 책을 꾸준히 읽고 있었다)에서와 거의 비슷한 관점들이긴 하다.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경제 선진국들이 과거에는 오히려 보호무역으로 지금의 위치에 올라왔다는 것, 그러면서 지금은 신자유주의를 내세우며 개발도상국들의 사다리를 걷어차고 있는 것. 후발 국가의 경제를 발전시키는 데는 집단적인 노력이 필요하며, 그중에서도 정부 주도의 정책과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얘기. 스위스와 싱가포르의 예를 들면서 탈산업화의 성공을 얘기하지만, 실은 그 두 나라가 제조업의 비중이 굉장히 높은 나라라는 점, 그래서 서비스업 역시 제조업의 탄탄한 배경이 없이는 모래 위에 지은 성과 같다는 것 등등.
그런데 여기서 이 책을 통해서 장하준 교수가 경제학의 어떤 학파를 바탕으로 경제에 관한 생각을 ‘전도’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역시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경제에 관한 다양한 관점을 소개하고 있으며, 될 수 있으면 어느 쪽의 것만을 취하려 하지 않았다(물론 그런 부분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의 생각이라는 게 분명 있으니 말이다). 가장 와닿는 얘기는 경제학이 ‘과학’이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과학도 ‘옳음’과 ‘그름’으로 분명히 나뉘는 경우가 없는 경우도 있지만, 경제학은 더더욱 ”객관적 사실과 반론의 여지가 없는 추정에 근거한“ 과학이 아니라고 인정하고 있다. 그러니까 어떤 경제학자라도 편견에 바탕을 둔 주장을 할 수 있으며, 하나의 경제 현상을 두고도 서로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