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카노 교코의 “역사가 흐르는 미술관” 시리즈의 세 번째 책이다. ‘명화로 읽는’이라는 꾸밈말이 있지만, 그림은 부차적이고 엄연히 영국의 역사에 관한 책이다(아마도 합스부르크가와 프랑스의 부르봉가를 다룬 앞의 책들도 그러리라).
아주 먼 옛날의 영국, 이를테면 아서왕의 전설 같은 데서 시작하지 않고 그나마 국가라는 틀을 갖추기 시작한 튜더 왕조의 헨리 7세에서 시작하고 있다(노르만 왕조, 플랜태저넷 왕조, 랭커스터 가문과 요크 가문의 장미 전쟁도 다루지만 본격적인 영국의 역사가 시작되기 전의 전사(前史)처럼 처리하고 있다). 그로부터 스튜어트, 하노버, 작센코브르크고타, 윈저. 다섯 왕조가 이어진다. 사실 하노버부터 (현재의) 윈저까지는 가문이 달라지지 않고 그저 이름만 바꾼 것이기에 같은 가문이라고 할 수도 있고, 또 좀 넓게 생각하면 튜더 왕조로부터도 어찌어찌 연결되어온 가문이다. 그러기 위해서 왕족끼리의 결혼, 친족끼리의 결혼을 했고, 그 때문에 일반인들은 거의 따라가지도 못하는 어지러운 혼인의 역사가 이어지고 있기도 하다.
나카노 교코의 이 책을 거의 순식간에 읽을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영국 역사가 간단하거나 내가 이 역사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다. 가지를 많이 쳐내 기억해야 할 만한 것들 중심으로, 그리고 관심을 끌만 한 것들을 연결시키면서 영국 왕조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본 저자의 책답지 않게(내 편견인지는 모르지만) 상당히 솔직히 자신의 느낌을 이야기하고 있고, 또 발랄한 느낌이 든다.
특히 영국 왕조의 이해되지 않는 측면들이나 영국의 풍습에 대해 조금은 갸웃거리는 어투를 많이 쓰고 있다. 튜더 시대의 걸출한 스타(헨리 8세, 앤 불린, 제인 그레이, 엘리자베스 1세)에 대한 역사서, 소설, 영화, TV 드라마가 지금도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을 보고 놀라울 뿐이라고 하거나, 헨리 8세의 다섯 번째 왕비 캐서린 하워드가 참수당하는 장면을 이야기하면서 ‘참으로 불쌍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고 한 마디한다. 놀랄 만큼 끈끈이 이어지는 불편한(아니 참담한) 영국 왕조의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를 여러 차례 반복하면서는 혀를 차고 있고, 영국의 번영이 실은 사략선, 노예무역,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에서 얻어진 것이었다는 데 대해서도 비판의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또한 “고상한 척하는 겉모습 안에 감춰진 추한 실체”에 대해서도 야유한다. 무수히 많은 애인을 만들어서 방종한 생활을 하면서도 자식의 일탈에 대해서는 가차 없었던 왕들이 많았고, 조금이라도 이상한 것을 연상케 하는 단어는 쓰는 것을 부끄러워 하면서도 매춘이 일상이었다. 특히 저자는 부모와 자식 간의 불황에 대해 자주 언급하고 있는데, 조선에서 있었던 왕과 아들의 불화, 이를테면 영조와 사도세자, 인조와 소현세자 등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면 고개를 내젓는 것을 생각하면 그게 거의 일상이었던 영국이 어떻게 그렇게 번영의 길로 이르렀는지가 아이러니한 생각도 든다.
그림은 평범하다. 주로 왕조의 인물들을 그린 초상화나 가족 그림들인데, 말하자면 프로파간다에 해당된다. 그래서 기법 상으론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다지 감흥이 오질 않는다. 그저 설명을 위해서 필요한 그림들이다. 그런데 인상적인 것이 있다면 바로 그 프로파간다다. 화가는 왕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게 아니라 미화시켜 그렸는데, 엘리자베스 1세도 그랬지만(늘 나이보다 젊게 그렸다), 그 절정에 이른 게 조지 4세다. 소개하고 있는 그림은 토머스 로런스가 1816년에 그린 그림인데, 이 그림을 보면 이보다 더 세련되고 멋진 왕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제임스 길레이가 그린 1792년의 풍자화를 보면 뚱뚱하고 탐욕스러운 한 촌스런 인물이다. 그림도 이 뚱뚱한 인물이 더 젊었을 때이 그림이다. 진실은 어느 쪽인가 하면 누구라도 알 수 있듯이 풍자화쪽이다. 이런 걸 보면 그림을 그대로 보는 게 아니라 뭔가를 알고 봐야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또 하나 궁금해지는 건 세계대전 와중에 독일풍의 작센코브르크고타라는 가문 이름을 버리고 윈저로 바꾼 지금의 왕가가 나중에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왕위에 있었던 엘리자베스 2세는 물론 지금의 찰스 3세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