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자 조각가들, 약을 만들다

백승만, 『분자 조각가들』

by ENA

우리는 ‘가끔’ 궁금해한다. 내가 오늘 아침 먹은 약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이고, 어떻게 작용하는 것인지. 하지만 그 약이 목을 타고 넘어가면서는 그런 궁금증은 사라지고 만다. 우리의 호기심이 그다지 투철하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그런 질문이 보통의 사람에게 실질적으로 효용이 있지 않아서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걸 잘 알려주는 사람이 없어서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코로나 백신을 맞고 열이 오르거나 할 때 먹으라고 한 약이 ‘아세트아미노펜’인지, ‘타이레놀’인지 그게 어떻게 다르고, 또 어떻게 같은 것인지를 좀 더 알면 훨씬 안심할 텐데, 나아가 그게 어떻게 작용하는 건지, 그래서 얼마나 효과가 있으며, 또 안전한 것인지를 그냥 그렇다고 하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그 속의 얘기를 알기 쉽게 얘기해주면 도움이 될 듯도 싶은데, 그런 설명을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백승만 교수의 『분자 조각가들』을 읽으면 바로 그런 설명을 친절히 듣는 것이다. 물론 약에 대해 설명하는 책이 없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화학자의 입장에서 약의 탄생과 역사에 관한 이야기를 약의 구조와 관련지어 전달하는 책은 그리 흔한 것 같지 않아 반갑다. 특히 생물학자로서 이런 이야기는 또 다른 느낌을 주는데, 백승만 교수가 책에서도 보여주고 있듯이 생물학자와 화학자는 질병과 약에 관해 접근하는 방식이 다르며, 그 방식이 서로에게 낯설지만 또한 서로에게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더욱 흥미롭고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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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만 교수는 화학자가 약을 만들어가는 방식을 미켈란젤로와 같은 ‘조각가’에 비유하고 있다. 조각가가 대리석을 다듬거나, 진흙은 보태가며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만들어가듯 화학자들은 기본물질을 바탕으로 화학구조를 바꿔가며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을 만들어간다는 의미이다. 특히 현대의 화학자들이 약을 만들어가는 방식은 과거에 우연에 기대는 방식과는 많이 달라져 미리 계획하고 설계한 후에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더욱 ‘분자 조각가들’이라는 제목의 표현이 맞는 듯하다.


물론 책은 ‘운으로 찾아낸 약’에서 시작한다. 타이레놀과 같은 약이 바로 그것인데, 이 약이 아스피린보다도 먼저 발견되었지만 50년 동안이나 잊혀졌다(실험의 잘못으로) 다시 세상에 나왔다 한다. ‘운’으로 찾아냈다고 하지만, 그래서 세렌디피티라는 말을 하지만, 세레디피티라는 것이 오랜 동안의 노력 끝에 찾아오는 행운이라는 의미에서 이를 단순한 행운으로 생각할 것은 아니다.


많은 약들이 자연을 모방하여 만들어낸다는 의미에서 2장에서 다루는 약들 역시 흥미롭다. 그런 경우 많은 약들이 식물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 만들어내는 물질에 관해 얘기하는데, 여기서는 거기에 더해 뱀이나 독도마뱀이 만들어내는 물질에서 출발한 당뇨약과 비반 치료제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사람을 연구하여 나온 약으로는 항암제라든가, 에이즈 치료제 등을 다루는데, 약들이 서로 적응증을 달리하면서, 혹은 어느 한쪽에서 부침이 있던 약이 다른 쪽에서는 특효약으로 만들어지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자연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물질을 창조하는 형식으로 약을 만드는 경우도 소개한다. 여기에선 수면제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수면제에서 출발해서 유용한 약, 혹은 큰 문제를 일으킨 탈리도마이드와 같은 약들로 이어지는 과정은 마치 드라마를 보는 느낌도 든다.


현재 약을 만드는 방식이 많이 달라졌다는 것도 의미 있게 읽힌다. 실패한 전략에 관한 이야기도, 그 실패한 전략이 생물학자들의 접근 방식과 결합하면서 새롭게 유용한 전략으로 등장했다는 이야기도 흥미로우면서, 여러 분야가 서로의 분야를 이해하고, 또 이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에 대한 교훈을 준다고 할 수 있다. mRNA 백신에 대한 내용은 부록 같은 느낌이 든다.


많은 흥미롭고, 또 유용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재미있게 읽었고, 또 공부가 많이 되었다. 그런데 가장 재미있는 부분을 딱 하나만 꼽으라면 다음 그림이다. ‘나노키드(Nanokid)’라고 하는 것인데, 2003년도에 만들어진 화합물이라는데, 춤추는 아이들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실제로 이용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화학이 지루하고, 딱딱한 학문만은 아니라, 이런 유머도 부릴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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