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그래도 과학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살아가는(실제로는 그걸 직업명으로 쓸 때는 별로 없긴 하다) 입장에서 보면 과학은 별것 아니게 여겨질 때가 많다. 과학의 분과 학문마다 중요한 원리가 있으니 그것을 익히고, 그것을 바탕으로 전문적인 기술이나 방법론을 배워서 새로운 것에 적용하거나, 알고 싶은 것에 관해서 탐구하는 것이다. 이걸 쉽다고 할 수는 없고, 또 전문적인 과학자, 독립적인 과학자로 서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과학이라는 활동 자체가 그다지 복잡한 과정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는 게, 앞에서 내가 ‘별것 아니게’라는 표현을 쓴 이유다.
그런데 그렇다고 절대 과학이 별것 아니지는 않다. 과학은 다양한 층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정의내릴 수 있지만, 과정을 얘기하자면 ‘논리적’, 정신을 얘기하자면 ‘회의적’과 같은 단어를 언급할 수 있다. 거기에 근거, 혹은 증거에 기반한다는 것 정도를 덧붙이면 충분히 과학이라는 활동을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자세는 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별로 어려워보일 것 없는 과정, 정신, 자세이지만 사실은 확실하게 쉬운 것만은 아니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너무나도 비과학적인, 나아가 반과학적인 태도와 주장이 횡행하기 때문이다. 혈액형과 성격이 비과학적이라면, 백신에 관한 전면적인 부정 같은 것은 반과학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허준영은 ‘과학을 생각한다’. 과학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일상에 깃든 과학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과학)기술이 우리 현대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를 생각하고, 과학이 보여주는 신비하고 이상한 세계를 생각한다. 그리고 과학의 미래를 진지하게 생각한다.
스스로 <에필로그>에 적고 있듯이 과학적인 내용에 대한 설명은 상식적이다. 이 부분은 ‘과학자로서는’ 조금 불만이지만, 그가 과학에 대해서 생각하자는 취지에서는 적절하다. 비록 과학자는 아니지만, 할 수 있으면 과학적으로 좀 더 깊은 내용을 소개할 수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그가 의도하고 있는 것은 이만큼이다. 이만큼 우리 곁에 과학이 있고, 그 과학이 우리를 이만큼 이끌어왔고, 앞으로도 거기에 많이 의존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 않을 것이지만, 그래도 과학을 무시하고서야 우리가 맞이할 미래에 대한 상도 잡지 못한다. 과학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와 과학을 무시하는 태도는 구분해야 한다.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과학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면 좋은 독서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