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털』에서는 그야말로 깃털의 모든 것에 집중했다. 『씨앗의 승리』에서도 온갖 씨앗에 관해 알려주는 데 힘을 다했다. 그러더니 『벌의 사생활』에서부터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물론 벌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지만, 결국은 ‘사라지는’ 벌이 최종 포인트였다. 이번에는 어떤 특정한 동물이나 대상을 두지 않았다. 기후변화의 한 가운데에 있는 모든 동물과 식물이 이번 책의 주제다. 소어 핸슨은 점점 자신의 책을 통해 가치와 의미를 어떻게 전달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있는 듯하다.
기후변화(이제는 이런 용어가 너무 온순하고 평범하다는 지적이 있어 다른 용어로 대체되고 있는 실정이다)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상, 현실이 되고 있다. 과학자 중에는 단 몇 퍼센트를 제외하고는 이를 인정한다. 그런데 이 기후변화 시대를 바라보는 관점과 이에 대한 대처에는 상당한 편차가 존재한다. ‘대붕괴’를 얘기하는 폴 길딩처럼 경제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이도 있고, 북극의 곰을 지속적으로 비추며 대중의 관심을 유도하는 환경론자들도 있다. 이를 국제정치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이들도 있다. 대다수는 인식은 하고 걱정은 하지만, 당장 먹고 사는 데 바빠, 혹은 큰 지장은 없으니 지금 살아가는 대로 살아간다. 물론 ‘나를 포함한’ 그들도 가끔은 무언가를 한다. 문제는 ‘가끔’이 아니라 기후변화에 대비한 무언가를 일상이 되어야 한다는 데 있다. 당연히 기후변화의 그래프 끝을 내리기 위해선 정부와 기업의 결정이 더욱 큰 역할을 할 수 밖에 없지만, 정부와 기업을 강제하기 위해서라도 대다수의 무언가를 위한 행동이 필요하다. 그런데 무엇이 그렇게 하도록 할 것인가?
소어 핸슨이 접근하는 방식은 그야말로 부드러운 방식이다. 그는 스토리텔링을 선택했다. 보전생물학자로서 무너져내리는 빙하 옆에서 방황하는 북극곰을 보여주는 대신 기후변화에 어떻게든 대응하는 자연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 상징이 바로 허리케인 도마뱀과 플라스틱 오징어다.
허리케인 도마뱀이란, 허리케인에도 날아가지 않고 나무에 단단히 붙어 있도록 발가락의 둥근 패드가 크고 앞다리도 길며 뒷다리는 짧은 도마뱀을 가리킨다. 갈라파고스 제도의 핀치 새가 가뭄 시기에 부리의 길이가 변하듯 도마뱀도 환경에 순식간에 적응하며 그 형질은 자손에게 전달된다. 허리케인 도마뱀은 진화의 힘을 보여준다.
플라스틱 오징어란, 훔볼트오징어에 관한 이야기에서 나온다. 이 오징어는 2009년과 2010년 수온이 크게 상승한 시기에 어시장에서 사라졌다고 한다. 그런데 자세히 조사해봤더니 훔볼트오징어는 사라진 게 아니라 다른 전략을 통해 살아남아 있었다. 예전에 비해 절반밖에 안 되는 시간 동안에 생장을 마치고 번식에 돌입하고, 다른 먹이를 먹고, 절반의 수명만으로 세대를 이어갔던 것이다. 어부들은 원래 크기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 이 오징어를 내다 버렸다. 이는 생물의 가소성(plasticity)을 상징한다.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해서 살아남는 특성이다.
그렇게 모든 생물은 자연환경의 변화에 대처하려고 한다. 나무들이 짧은 시간에 먼 거리로 이동한다거나 하는 것도 그 예이다. 먹이를 바꾸기도 하고, 레퓨지와 같은 피난처를 찾아 생존을 도모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가소성이 큰 생물들은 어찌어찌해서 살아갈 방도를 찾아가는데, 특정 환경에 아주 강력하게 적응한 전문종들은 그렇지가 못하다. 약간의 환경 변화에도 맥을 못추고 멸종의 길을 걸어간다.
소어 핸슨은 이와 같은 예들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들을 연구하고 있는 과학자들을 통해 그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원래는 기후변화를 염두에 두고 연구를 시작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새를 연구하다보니, 물고기를 연구하다보니, 나무를 연구하다보니, 화석을 연구하다보니 당연한 것처럼 기후변화라는 주제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애초 기후변화가 배경이 되는 현상이었지만, 이제는 기후변화를 중심에 두고 연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그만큼 기후변화가 생물에 미치는 영향을 광범위하며 깊다.
소어 핸슨은 너무 낙관적으로 생각해서도 안 되지만,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역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을 여러 동물과 식물의 예를 통해서 보여준다. 그는 강요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뭔가를 느낄 수 있을 거라고, 그래서 우리도 무언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리라 기대한다.
“다른 동식물의 삶은 그 과정에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다른 생물의 역경과 대처를 이해한다고 해서 위기를 덜 걱정하게 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똑똑하게 걱정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