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출판사의 대표들이 이 책을 추천하고 있었다. 궁금했다. 어떤 책이길래, 야나부 아키라의 『Freedom, 어떻게 自由로 번역되었는가』와 비슷한 책일 거라 예상하기도 했다.
야마모토 다카미쓰는 게임 개발자이면서 서양에서 일본으로 이입된 지식과 번역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독립 연구가이다. 그는 니시 아마네의 「백학연환」을 만나고 이를 깊이 연구한다. 인터넷 웹사이트에 ’「백학연환」을 읽다'를 연재하고, 이를 고쳐 책으로 출간했다. 그 책이 바로 『그 많은 개념어는 누가 만들었을까』이다(물론 이는 우리말 제목이고, 원제는 인터넷 연재물의 제목과 같다).
니시 아마네는 에도 시대 말에 태어나 메이지 시대에 활동한 지식인이었다. 유학을 공부했고, 나중에는 네덜란드에 유학해 서양 학문을 배웠다. 돌아와서는 막부의 고문으로 일하기도 했고, 메이지 유신 이후에는 새 정부에도 참여했다. 사숙(私塾)을 운영하면서 제자들을 길러내기도 했는데, 「백학연환」은 그 사숙에서 한 강의 내용이다. 제자가 강의 내용을 기록하여 후대에 남겼다. 야마모토 다카미쓰가 이를 다시 독해했다.
제목인 '백학연환(百學連環)'이라는 말부터 낯설다. 이 말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것이 이 책에서 맨 처음 하는 일이고, 또 이 책의 성격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백학연환(百學連環)’은 지금의 우리라면(일본인이나 한국인 모두) 백과사전이라고 번역할 encyclopedia라는 영어를 니시 아마네가 번역한 말이다. '백학(百學)’은 ‘모든 학문'을 말한다. '연환(連環)'이란 '연결되는 고리'를 의미하며, 그래서 '백학연환'은 '둥근 고리를 이룬 교양'이 된다.
니시 아마네는 다양한 학문에 대해 강의를 했고, 이를 '백학연환'이라고 칭했다. 물론 야마모토 다카마쓰가 읽은 「백학연환」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백과사전이 아니다. 학문(학술)의 기본에 대해서 다룬다. 말하자면 제자들에게 학문을 하는 방향을 알려주는 기본서인 셈이다. 야마모토 다카마쓰는 한 구절 한 구절을 독해하면서 니시아마네가 사용한 말이 어디서 왔는지를 끈질기게 추적했고, 그가 말하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해석했다.
"니시 아마네는 서양 학술을 문자 그대로 몸으로 받아들이고 기존의 한문 교양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그러나 그에만 지식과 발상에 대해 새로운 일본어를 창조하고, 때로는 이를 다듬고 수정하는 노력을 통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계속 사용되고 있는 말의 기초를 구축했습니다. 「백학연환」의, 특히 「총론」은 그러한 행위의 정수가 담긴 매우 드문 기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58쪽)
이 책은 두 저자와 관련해서 모두 놀랍다.
니시 아마네와 관련해서는 그 이전 일본에서 일었던 난학과 연관되어 서양의 새로운 개념을 일본화하는 과정이 놀랍다. 난학이 네덜란드의 저작을 일본어 개념으로 옮겼다면 니시 아마네는 라틴어와 영어를 기반으로 했다는 점이 다른 점이다. 단순히 용어를 새로이 만들어내는 일만이 아니라 거기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고, 분류하고, 체계를 세우며, 그것을 이해시키기 위해 다양한 예를 생각했다.
야마모토 다카미쓰와 관련해서는 그런 니시 아마네의 작업을 추적하는 집요함이 놀랍니다. 그저 그의 강의록을 번역하는 작업을 넘어서 그가 어떤 데서 의미를 취했으며, 어떤 문헌을 통해서 그것들을 파악했는지를 찾아내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을 취했다. 자신은 서지학(書誌學)에 문외한이기에 한계가 있다고 하지만 학문적으로 정통하지 않다는 점을 제외하면 서양의 저서와 중국의 고서 등을 넘나들며 찾아가는 과정은 니시 아마네의 작업을 이해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정교하다고 볼 수 있다.
다시 한번 생각했다. 우리의 학문적 개념, 나아가 생활에서 쓰이는 개념들이 근대 일본에서 참 많이 왔다는 점을. 이 점과 관련해서는 우리를 비하할 필요도, 또 그렇다고 일본을 찬양하는 것도 아니다. 이제 다시 우리말로 된 새로운 개념어를 만들어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지도 않는다. 이제 우리는 (니시 아마네가 만들어낸) '철학(哲學)'과 같은 용어를 우리말이 아니라고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다만 그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잘 쓰기 위해서 뿌리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지금과는 달리 번역된 것도 있는 니시 아마네의 번역어를 보면서는 그런 개념을 이해하는 데 어떤 작업이 필요했는지도 좀 더 이해하게 되는데, 그런 고민 없이 무작정 받아들이는 것이 부끄러운 일일 수도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