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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Jul 27. 2023

맹렬한 사랑, 단순한 열정

아니 에르노, 『단순한 열정』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바닷가에 있는 저택 따위를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


겨우 60쪽 남짓한 소설. 단편 소설의 분량. 거기에 자전적 글쓰기, 그러니까 완전히 자신의 얘기. 그 얘기는 연하의 외국인과의 사랑에 관한 것이다. 자신이 러시아 외교관이던 유부남과의 불륜을 맺으며 느꼈던 감정을 치열하게 해부하고 있다.


만약에 이것을 소설이라고 하지 않았다면? 이런 생각을 해 본다. 그러나 그런 가정은 부질없다. 분명 아니 에르노는 이게 자신의 이야기라는 것은 인정하고 있지만, 또한 이게 소설의 장르에 속한다고 독자에게 확신시킨다. 사실은 이 글의 장르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일 것이다. 이 글을 통해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 독자가 받아들이는 느낌이 중요하다는 것.


아니 에르노는 마흔 살 여인이 가진 사랑의 '단순한' 열정을 맹렬하게 기록하고 있다. 주로는 상실이다. 남자는 사랑에 목매지 않는다. 그저 여자를 섹스의 파트너 정도로 여기는 듯하지만, 거꾸로 생각해 남자의 감정을 기록해 본다면 반대로 여길 수도 있을 것 같다. 이건 철저하게 한 사람의 관점에서 바라본,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자신의 의식과 감정이다. 그러므로 '단순하다'. (『단순한 열정』의 이야기 이후 아니 에르노와의 사랑에 관해 필립 빌랭이라는 청년이 『단순한 열정』을 그대로 본 따 『포옹』이라는 소설을 발표했다는 것은 그래서 더욱 시사적이다.)


독자들은 왜 이 짧고, '단순한' 소설에 열광했을까? 그런 사랑에 대한 희구일까? 그런 사랑에 대한 강렬한 감정에 대한 동화일까? 혹은 그런 감정에 대한 치열한 기록 때문일까? 나아가 그 기록을 읽는 행위에 대한 어떤 느낌일까? 아니 에르노의 작업은 그 과정을 거쳐 자신과 독자를 잇는 것은 아닐까? 





개인의 경험(사랑), 작가의 내면, 내면에 대한 기록, 그리고 읽는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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