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상풍'이 등장하는 소설을 찾다 읽었다. 하지만 파상풍은 이 소설에서 맨 마지막에야 등장한다. 두 팔을 잃은 화가 파도 조르디가 팔을 잃은 자리에 세균이 침투하여 사망했다는 얘기로, 파상풍에 관한 내용은 단 한 줄에 불과하다.
소설은 천재 화가에 관한 긴 부고(訃告)다(최종적으로 ’파상풍‘으로 사망한). 그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었으며, 얼마나 노력했으며, 또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누구를 사랑했으며, 누구를 미워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죽었는지에 관한.
배경은 애매하다. 신권이 왕권을 거의 압도하는 시기는 당연히 현대는 아니다. 그렇다고 과거의 어느 시기를 특정할 수 있지도 않다. 그럴 만한 단서도 없다. 여러 시기와 여러 지역이 혼합되어 배경을 이룬다. 당연하게도 등장인물도 특정한 한 사람을 모델로 지목할 수 없다. 물론 어떤 부분들에서는 누군가가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거기서 그친다. 소설가는 다양한 인물을 섞어 인물들을 창조해냈다.
파도 조르디라는 화가의 삶은 분명 특수하다. 천재적인 화가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가 귀족 여인의 사랑을 받고, 왕세자비의 정부가 된다는 것도 크게 특수한 삶의 이야기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들은 매우 보편적이다. 말하자면 이름을 날리고 싶은 욕심,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감정, 자신보다 나은 사람에 대한 질투, 자신을 괴롭히는 이들에 대한 복수심 등등.
소설을 읽으며 파상풍에 관해서는 거의 얻지 못했지만, 한 줄로 정리되기를 거부한 한 불운한 천재 화가의 삶을 그린 소설로 내 삶을 어떻게 기록될 것인지에 대해 걱정도 하고, 기대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