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디스 리치 해리스는 『양육 가설』이라는 책으로 크게 주목받은 독립 연구가이다. 여기서 주목이라는 것은 긍정적인 의미도 있지만, 많은 비판을 받았다는 것도 포함된다. 비판은 주로 제도권 연구자들에게서 나왔다. 사람의 특성을 결정하는 것이 환경, 즉 양육(물론 양육은 환경보다 좁은 개념이다)이 결정적이라는 많은 연구 결과들이 문제가 많다는 것을 보여준 책이었기 때문에, 기존 연구자들의 반발을 살 수밖에 없었다. 건강 문제 때문에 거의 집에서 연구 활동을 할 수밖에 없는 주디스 리치 해리스는, 오히려 개의치 않았던 모양이다. 어느 조직에도 속하지 않은, 또한 어떤 세부 학문 분야에도 포함되지 않는 자유로움이 기존에 공고화된 이론을 반대할 수 있는 ‘자격’과 함께 ‘용기’를 주었는지도 모른다.
『양육 가설』에 이어 낸 『개성의 탄생』은, 이란의 일란성 접착쌍생아, 랄레흐와 라단 비자니의 얘기로 시작한다. 스물 아홉 해 동안 늘 함께 했던 랄레흐와 라단은 위험스런 분리 수술을 결정했고, 결국은 수술 도중 사망했다. 해리스가 주목한 것은 그들의 비극이 아니다. 접착쌍생아, 즉 그 누구보다도 유전적으로 동일할 수 밖에 없는, 또한 환경적으로도 분리될 수 없는 둘이 성격이 매우 달랐다는 데 해리스는 주목했다. 왜 그런가? 바로 개성이란 것은 왜 생기는가?에 대한 문제를 이 책에서 다루고 있다.
당연히 유전적인 것을 무시할 수는 없다. 일란성 쌍둥이에 대한 연구를 통해 개성의 절반(이 책에서는 45%라고 하고 있지만) 가량은 유전적 요인 때문이라고 한다. 당연히 유전적인 요인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드는 것은 앞의 접착성 일란성쌍생아를 비롯하여 많은 일란성 쌍둥이, 이란성 쌍둥이, 형제자매는 왜 그렇게 다른가? 유전적인 것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반은 무엇 때문인가? 이 책은 그 나머지 반을 찾기 위한 긴 논증이다.
우선 해리스는 기존의 논의를 정리하고 비판한다. 범인을 찾아 나서는데, 일단 다른 사람들이 범인이라고 주장하거나, 적어도 용의자라고 데스크에 올려진 것들을 검토한다. 그것들은 양육, 유전자-환경 상호작용, 가족 내 환경(출생 순서), 유전자-환경 상관관계 같은 것들이다. 해리스는 이 용의자들의 문제점들을 조근조근 지적한다. 사실은 “원숭이 소동”이라든가 ‘출생 순서’에 따른 성격 차이 등을 주장한 논문, 내지는 연구자들을 추적하여 그 주장들이 토대가 허약할 뿐만 아니라 연구 자체로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내는 과정이 더 흥미진진하다. 아무튼 그런 추적의 과정 등을 통해 기존의 가설들을 내친다.
그러고는 새로이 제시하는 것들은 바로 관계 체계, 사회화 체계, 지위 체계, 바로 이 세 가지다. ‘체계’라고 해서 딱딱해보이는데, 모두 타인과의 관계와 그에 대한 자신의 반응이다. 관계 체계는 우호적인 인간관계를 만들고 유지하기 위한 목표를 지닌 것으로 타인에 대해 무언가를 알아내고 그것을 또한 다른 타인과 공유하는 것을 말한다. 사회화 체계란, 집단의 구성원이 되기 위한 목표를 지닌 것으로 자기 집단에 속하면서 다른 집단에 대해서는 배타심을 갖는 것을 포함한다. 지위 체계란, 경쟁이라고 할 수 있는데, 경쟁을 통해 지위를 향상하고, 또한 자신과 타인을 비교함으로써 자신을 더 많이, 바로 알아가는 과정을 말한다. 인간은 어린 시절부터 이 세 가지 체례를 통해 다른 사람과 달라진다(고 주장한다).
사실 해리스의 주장은 그대로 따라가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것들이 왜 잘못 되었는지에 대한 논파와 마찬가지로 그녀의 주장도 다른 사람에 의해 비슷한 방식(물론 연구 과정 자체에 대한 문제점 지적은 아닐 것이지만)으로 논파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인간을 사회에 적합하게 만드는 것으로, 개인적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려는 성향과 자신이 속한 사회규범과 관습에 자신의 행동을 맞추려는 경향, 그리고 사회의 다른 성원들과 경쟁하려는, 그리고 가능하면 어떤 식으로든 그들을 앞지르려는 성향”. 이와 같은 말은, 물론 많은 연구 결과들을 종합해서 나오는 말이지겠지만, 어쩌면 당연한 말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그래도 해리스는 자신의 주장에 자신이 있다. 그렇지만 인간을 이해하는 게 간단하지만은 않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래서 앞으로 자신의 이론을 비판하고, 새로운 이론이 나온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이론보다는 간단하지는 않을 거라고 예측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