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은 인간의 삶에서 반드시 거칠 수밖에 없는 것이면서,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는 데 좋은 소재이기 때문에 소설에서 많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 그 아픔에 동조하거나, 혹은 악인의 경우에는 천벌이라 여기며 고소해한다. 또한 소설 속의 질병은 질병을 이해하는 단서가 되기도 하는데, 특히 증상에 대한 설명이 뛰어나거나, 병의 진행 과정에서 사람의 심리를 잘 묘사한 소설(이를테면,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같은 경우)의 경우가 그렇다.
현직 산부인과 의사이자, 수필가인 김애양의 『명작 속에 아픈 사람들』은 자신이 읽어 온 소설들에서 질병이 등장하는 소설들을 모아서 소개하고 있다. 무려 39편이나 된다. 질병을 묘사한 소설이 이렇게나 다양하게 있었던가 싶을 정도다. 여기에는 내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세균이나 바이러스 등에 있는 감염질환에 대한 소설이 가장 많다(『운명』(임레 케르케스)의 봉와직염, <베짱이>(안토 체호프)의 디프테리아, 『나나』(에밀 졸라)의 천연두, 『페스트』(알베르 까뮈)의 페스트,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카밀로 호세 셀라)의 공수병, 『유령』(헨리크 입센)의 매독, 『깨어진 거울』(애거사 크리스티)의 풍진, 『로스할데』(헤리만 헤세)의 뇌막염, 『마의 산』(토마스 만)의 폐결핵, <우표 수집>(카렐 차페크)의 성홍열, 『감정 교육』(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아구창). 그만큼 항생제나 백신이 등장하기 전 인류가 감염에 취약했으면서, 감염이란 것이 돌발적인 것이고, 고통스런 진행 과정과 함께 급작스런 죽음과도 연결되기 때문에 소설의 소재로 많이 등장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김애양씨가 소개하는 질병 가운데는 질병인 듯, 질병 아닌 듯 한 것들도 적지 않다. 이를테면, 바를랑 살라모프의 『콜리마 이야기』에 등장하는 ‘꾀병’, 스와보미르 므로제크의 <미망인들>에서 한 신사의 죽음의 원인이 되는 ‘약물 부작용’, 루이스 피란델로가 쓴 『나는 고 마티아 파스칼이오』의 ‘사시’, 아이작 싱어의 『적들, 어느 사랑 이야기』에 등장하는 ‘상상 임신’,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쓴 『우리들의 시대에』를 통해서 보여주는 ‘출산’의 위험성, 몰리에르의 『상상병 환자』에서의 ‘건강염려증’ 같은 것들이 그런 것들이다. 이걸 질병이라고 하기에는 뭣하지만, 이것들로 인해서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또 실제로 질병과 같은 결과가 나타나는 것을 보면 무리해서 포함시킨 것만은 아니라고 본다.
그 밖에도 췌장암(『이반 일리치의 죽음』), 위암(『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조현병『밤은 부드러워』, 뇌졸중(『광인』) 등과 같은, 지금도 심각하게 여겨지는 질병도 있는가 하면, 각기병(『게 가공선』), 포피리아증(『파울라』), 해표상지증(<스타의 아들>), 강경증(『루이 랑베르』)와 같은 낯설거나, 혹은 요즘은 거의 잘 볼 수 없는 질병들도 있다. 전립성 비대증이나, 알츠하이머병, 졍맥류성 궤양(『1984』에 나온다는데, 나는 이것에 거의 주목하지 못했었다), 충수염, 마약중독, 간질, 선천성 대사이상 증후군, 천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녹내장 등과 같은 친숙한 질병들도 소설들은 다루고 있다.
읽은 속설들도 있고, 읽지 않은 소설들도 많다. 읽었더라도 전혀 주목하지 않았던 것을 다루기도 해서, 머리를 긁적이게 하는 글도 있다. 다만 작품의 줄거리에 소개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그에 대한 작가의 생각은 짤막한 게 좀 아쉽다. 여기의 글들이 잡지에 미리 실었었기 때문에, 한정된 공간에서 독자들에게 소설을 소개한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된 것으로 이해할 수는 있을 것 같다. 내게는 풍부한 자료로서 더 의미가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