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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A Aug 25. 2023

소설의 불편함, 읽기의 가치

W.G. 제발트, 『아우스터리츠』

참 불편한 소설이다. 내용과 형식이 다 그렇다. 그런데 소설 읽기의 불편함은 다분히 소설가가 의도한 것이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불편해야 한다. 그 불편함 속에서, 혹은 불편함을 뚫고서 이야기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그 불편함을 견뎌냈을 때,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


이야기의 구조는 단순하다. 화자가 있다. 어떤 인물인지 밝혀지지 않는다. 그리고 아우스터리츠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화자에게 전달한다. 화자는 이야기에 거의 개입하지도 않는다. 화자는 거의 아우스터리츠의 말을 전달하는 역할에 머문다. 그래서 소설에서 반복되는 문구는, “라고 아우스터리츠는 말했다”이다.


아우스터리츠는 1939년 가을 유대인 박해가 심해지던 시기, 체코 프라하에서 네 살의 나이로 영국 구조 단체의 유대 어린이 호송 작전으로 영국으로 보내졌다. 웨일스 지방의 목사 집안에서 자란 그는 자신을 데이비드 일라이어스라고 알고 지내다, 열 네 살 학교 교장 선생님에 의해 자신의 본명을 알게 된다. 집안에서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었다. 그리고 비극적으로 양부모가 돌아가시고, 성인이 된 후 자신의 과거를 찾는 작업이 시작된다. 그가 화자에게 간헐적으로 전달하는, 하지만 장황한 이야기다. 





네 살 적 일어난 일을 기억할 수 있는가? 나는 뭔가 기억나는 것 같지만, 그 기억을 믿을 순 없다. 그게 과연 그때의 일인지 분명하지도 않으며, 정말 있었던 일인지도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아우스터리츠는 어느 순간 그 장면을 기억해낸다. 리버풀의 어느 대합실에서 가슴에 배낭을 안고 있는 한 소년을 보고 난 이후다.


“내가 회상할 수 있는 한 처음으로 그 순간에 나 자신을, 반 세기도 더 전에 영국에 도착해서 내가 이 대합실에 분명히 와 본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낼 수 있었어요. 이것을 통해 내가 빠진 상황이란 많은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정확히 기술할 수 없는, 내 속에서 느끼는 일종의 강탈이고, 수치와 염려, 혹은 당시 그 낯선 두 사람이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말로 다가왔기 때문에 말문이 막혔던 것처럼 그것에 대한 말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말로 할 수 없는, 완전히 다른 무엇이었어요.”


아우스터리츠는 륙색을 매고 다니며 자신의 과거를 찾아나선다. 결국 프라하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흔적을 찾아낸다. 그리고 희미하게 드러나는 비극을 확인한다. 예상했던 바다. 그 당시 그곳에 살던 유대인들이 처했던 보통의 삶이 그러했던 것이다. 사회활동을 하던 아버지는 프랑스로 갔고, 배우였던 어머니는 천신만고 끝에 아들을 기차에 태워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과거와 그 과거에 대한 기억을 찾아나가는 이야기다. 그렇게 ‘아우슈비츠’, ‘홀로코스트’를 폭로한다. 거의 그 얘기는 하지 않으면서.


이제 이 소설의 불편함을 얘기할 때다.

우선은 형식의 불편함이다. 문단이 없다. 320쪽의 소설이 단 서너 문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디서 잠깐 숨을 돌려야 할지 난감하다. 문장들도 길다. 어떤 문장은 마침표 없이 여러 페이지로 이어진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기억, 아우스터리츠의 기억을 표상하는 것일까? 그 긴 문장들, 단락지어지지 않는 글을 읽으며 자꾸 앞뒤를 헤매며 읽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이야기를 곱씹을 수밖에 없다.


아우스터리츠는 공간을 헤맨다. 건축과 거리, 장치들을 이야기한다. 거기에 담긴 상징성에 대해 쏟아놓는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으로 데려다 놓고 이야기를 하다, 익숙해질 만하면 다른 공간으로 이동한다. 독자들에게 자신의 여정에 낯섦을 강요하는 듯하다. 그렇게 생경한 공간에서, 생경한 이미지를 가지고 다시 그 얘기를 한다. 의식의 흐름대로 공간을 이용하고, 기억을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치밀하게 계획했다.


제발트는 독일 출신이면서 영국에서 살았고, 독일 문학을 가르치며, 독일어로 작품 활동을 했다(기록을 보면 영문 시집도 냈다). 그래서 자신의 독일어가 어떤 독일인도 쓰지 않는 언어라고 했다고 한다. 일상적인 언어가 아니라는 뜻일 게다. 그런 독일어로 쓰인 소설을 읽는 독일인은 어떤 낯섦 속에서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제발트의 마지막 작품이다. 이 작품에 대한 찬사를 뒤로 하고,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만약 그가 살아 있었다면 노벨 문학상이 주어졌을 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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