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학(이런 용어가 있는지는 모르겠다)은 꽤 흥미있고, 의미있다. 역사 속의 승리자들이 어떻게 승리를 거머쥐었는지는 통쾌하지만, 그 승리에서 뭔가 교훈을 얻어내기에는 우연적인 요소가 많다. 또한 무엇을 얻어낼 수 있다기보다는 단지 우러러보아야 할 대상이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하지만 실패자, 그것도 성공에 가까이 다가갔던 실패자들의 이야기는 무언가를 배울 수 있게 하는 경우가 많다. 왜 실패했는지, 어떻게 하면 그 실패를 막을 수 있고, 승리로 되돌릴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한순구 교수의 『그들은 왜 최후의 승자가 되지 못했나』도 바로 그런 역사 속 실패자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좀 특이한 게 저자의 전공이다. 바로 경제학 교수다. 경제학자가 역사 이야기를 쓰는 게 그리 이상하지는 않다. 모든 학문에는 역사가 있으니까. 경제학 역시도 인간의 삶에 관한 것이니까. 그 가운데서 ‘경제적으로’ 실패한 이에 대한 얘기 역시 흥미로울 것이다. 그런데 그가 쓴 역사 이야기의 소재를 보면 일단 갸우뚱거려진다. 전혀 경제와는 관련이 없어 보인다. 항우라든가, 한신, 당 태종, 삼국통일의 주인공 김춘추와 김유신 등등.
그런데 한순구 교수의 전공을 보면 이해가 간다. 바로 게임이론이다. 스스로 ‘경제학을 연구하는 게임이론가’라고 하고 있고, 게임이론의 관점에서 역사 속 인물, 사건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실패, 혹은 성공은 결국은 ‘선택’의 문제라고 보고 있으며, 그들의 선택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그리고 어땠으면 성공에 이르거나, 혹은 실패를 최대한 막을 수 있었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경제학의 게임이론이라고 해서 무시무시한 것만은 아니다. ‘비협조적 게임’, ‘백워드인덕션’, ‘섀플리 밸류’, ‘홀드업’ 문제, ‘레퓨테이션게임’, ‘밴드왜건 효과’, ‘세컨드 무버’, ‘혼합전략’, ‘대리인 문제’, ‘데드라인’ 등등의 용어를 보면 낯설어보이고, 뭔가 대단해 보이는 것 같다(결국 대단한 결과로 이어졌지만). 하지만 비협조적 게임을 “내가 임명한 부하들이 왜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가?”로, 백워드인덕션을 “내가 더 많은 일을 하고, 공동 많이 세웠는데, 승진은 다른 사람이 하는가?”, 레퓨테이션 게임을 “작은 실수, 작은 허점이 왜 거대한 파국으로 이어지는가?”, 밴드왜건 효과를 “사람들이 양다리를 걸치고 있다, 거의 결과가 나올 때쯤 한쪽으로 쏠리는 이유는?”과 같은 질문으로 바꾸는 금세 이해가 된다. 그게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니까 말이다.
몇 가지 인상 깊은 것들이 있는데, 그중 한 가지는 교수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 저자인 한순구 교수가 교수라서 그런 것일 게다. 그리고 그것은 어디서나 여기의 게임이론이 적용된다는 얘기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이 가장 익숙한 곳에서 예를 찾은 것이고.
또 하나는 일본 역사의 예를 적지 않게 들고 있다는 점이다. 가마쿠라 막부의 몰락, 오다 노부나가의 죽음(‘혼노지의 변’), 도요토미 가문과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전투(세키가하라 전투), 오사카성 전투 등이 그것이다. 사실 일본 역사에서 굵직한 전환점이 된 사건들이지만, 특히나 일본 역사에 더 어두운 우리의 입장에서는 조금은 이례적이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상황에 대한 설명이 독자의 여러 눈높이를 고려하고 있고, 또 일본 역사에서의 의미와 함께 현대에 주는 교훈까지 그렇게 이질적인 느낌은 들지 않는다. 이참에 일본 역사를 더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한순구 교수가 ‘조언’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만약 자신이라면, 게임이론에서 가르치는 것이라면... 하는 전제를 두고 실패한 역사 속 인물들에게 조언을 하고 있다. 물론 이는 ‘역사 속 가정’이라는, 많은 사람들이 부질 없다고 하는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그런 작업이 없다면 우리가 역사를 읽는 이유를 적지 않게 잃어버리는 것이다.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 단지 흥미만을 위한 것은 아니기에. 그리고 그런 가정과 조언은 그대로 현대 사회의 문제로 이어진다. 물론 저자의 조언이 100% 정답일 수도 없고, 더 복잡해진 사회에서 그게 실제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더 복잡한 고려가 필요한 것이다. 그렇지만 역사 이야기를 통해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것, 특히 게임이론이 역사와 현대를 잇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 이 책이 짚고 있는 중요한 지점이다.